[월요포럼]정옥자/천도론, 역사의식 문제있다

  • 입력 2004년 2월 1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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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대선 공약인 수도 이전과 관련한 논란은 꺼지지 않는 불씨를 안고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노 대통령이 주재한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개막식’ 행사가 대전에서 개최되자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천도(遷都)가 필요했다”, “사회 지배 권력의 향배에 관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 발언은 왕조시대에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하면서 천도하던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민주주의시대에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웠다.

▼서울이 구세력의 功臣田인가 ▼

서울은 구세력의 공신전(功臣田)이 아니다. 기득권을 따진다 해도 강북과 강남은 사정이 다르다. 서울을 기득권 세력의 온상지로 보고 한판 흔들어 놓겠다는 심산이라면 오산이다.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놓고 그 갈등구조에 정치적 승부수를 걸겠다는 발상은 지역갈등을 정치도구로 삼던 구태보다 더 좋지 않다. 더욱이 지방화시대의 선거전략으로 서울을 속죄양으로 삼겠다는 의도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역사적으로 한강유역은 치열한 쟁탈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분단시대에 그러했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유역을 장악하는 나라가 바로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했다. 아차산의 고구려유적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하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국력을 기울였는지를 실증하고 있다.

가장 후진이던 신라도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과 연합해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고, 결국 백제를 배신하면서까지 한강유역을 차지해 통일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정작 한강유역에서 나라를 일으킨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밀려 한강유역을 포기하고 공주 부여로 계속 남천(南遷)하면서 국력이 졸아들고 결국 망국의 운명을 맞았다. 한반도의 허리인 한강유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려의 개경은 한반도의 중심지역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태조 왕건의 출신지로 궁예와의 결별을 위해서, 그리고 해상활동기지로서 당연히 천도의 대상지가 됐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의 연고지가 북변지역인 함흥이므로 아예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했다. 충청도 계룡산까지 답사해 논의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결국 고려시대부터 남경으로 중요시되고 한강이라는 한반도의 젖줄을 안고 있는 현재의 서울로 낙착됐다.

서울은 백제시대를 생략하더라도 조선시대 이후 600년 동안이나 우리나라의 수도였다. 풍수지리상 명당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라의 중심지역에 위치하며 북한강과 남한강을 아우르는 한강을 끼고 있어서 전국을 수로로 연결해 경제적 중심역할도 톡톡히 했다. 현대에 와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곳이다.

아울러 수많은 문화유산을 아우르고 있는 유서 깊은 고도로서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제의 상징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경복궁을 복원하는 이유도 우리의 정체성 회복과 관련된다. 사대문안 도성의 문화유적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제 겨우 문화유산의 의미와 보존에 개안하고 복원작업을 시작한 단계다. 천도란 문화적 역사적 맥락도 따져보아야 하는 문제다.

▼역사속 ‘한강 쟁탈전’ 주목해야 ▼

행정수도만이라도 꼭 옮겨야 한다면 통일에 대비해 남하하는 것보다 북상하는 편이 이치에 맞다. 독일 통일의 예를 들어 남북이 통일될 때 북한주민이 몰려들까 걱정되어 남천하자는 논리는 피해망상에 가까운 옹색한 변명이다. 일시적 혼란은 통일을 위해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라 치부하고 그 대책을 다른 방향에서 논의해야 한다.

차라리 어느 풍수연구가의 말대로 한강과 임진강 사이에 행정수도를 물색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아니면 남북 긴장관계도 완화되고 교통도 편리해지는 마당에 한반도의 배꼽이라고 하는, 풍광 좋고 공기 좋은 강원 양구로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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