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수도이전’인가 ‘투쟁’인가

  • 입력 2004년 7월 21일 2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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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거나, 토를 다는 사람들에게 퍼붓는 집권세력의 공격을 살펴보면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집권세력의 정국시각이 이토록 투쟁적인가, 놀라울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명운’을 걸었고 ‘퇴진운동’까지 언급했다. 임전무퇴 결의가 번득인다. 집권세력에선 경쟁하듯 기막힌 말을 쏟아냈다. 수도이전 반대를 ‘대선결과 불복’과 연결하는가 하면 ‘대통령탄핵 찬성세력’과 궤를 같이 한다는 운도 뗐다. 탄핵에 대한 사회적 지탄을 우회적으로 상기시킨 것이다. 드디어 ‘수도권 부유층 보호’를 위해 반대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수도이전 찬반공방의 본질은 변해도 한참 변했다. 친노 대 반노, 탄핵반대와 탄핵 찬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분리전략에 따른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반대세력을 제압하려는 정치투쟁만 뚜렷해졌다. 행정수도가 누구를 무찌르는 일인가, 반대세력만 찍소리 못하게 눌러놓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가.

▼‘밀리면 끝’의 절박감▼

수도이전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국가정책 중 하나다. 정책은 중요도나 시의성을 감안해서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 법이다. 수도이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지형을 뒤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도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으뜸기준은 완급을 구별하는 데 있다. 팽팽한 찬반이라도 힘겨울 터인데 반대여론이 더 많다. 이유는 ‘국민적 합의부족’이다. 천시(天時)도, 인화(人和)도 얻지 못했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대통령을 외곬의 결전장으로 내몰고 있는가. 대통령 스스로 ‘하나(수도이전)가 무너지면 정부의 정책추진력이 통째로 무너지게 돼 있다’고 밝혔듯이 강박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쉽게 말해서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절박감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16대 국회의 대통령탄핵 결의 후 권력내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에겐 싸움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고 말았다. 집권세력 쪽에서는 응분의 싸움이라고 하겠지만 국민을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정치요, 국정인가. 그래서 얻은 실익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증오심을 부추기는 포퓰리즘 정치에선 국정의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국정의 난조가 기본적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비생산적이고 반통합적인 분리전술에 집착하는가.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사건을 놓고 군을 둘러싼 집권세력 내 갈등은 새로운 양상의 일단이다. 대권을 쟁취하는 과정에서는 효과를 톡톡히 봤겠지만, 피아를 구분하고 공격하는 것은 국정도 아니고, 개혁도 아니다. 혁명적 투쟁일 뿐이다. ‘시민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인가.

집권세력에선 오로지 노무현 정부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나올 법한 이야기다. 대통령의 언행과 ‘코드 정치’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자. 문제는 이들만이 아니라 등 돌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데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지지도 추락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국정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정책이 통합이 아니라 분열로 치달을 때 누가 신뢰를 보내겠는가. 더욱이 정권이 들어선 후 사회 곳곳에서 발호하는 친북좌경세력은 사회적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지지해야 할 것 아니냐보다는 스스로 지지 폭을 더 넓혀나갈 방안을 찾고 고심했어야 했다.

▼신뢰 잃고 누굴 탓하나▼

그런데도 정작 신뢰를 잃고 한 일이 무엇인가. 국정의 기본인 신뢰를 얻지 못한 자책감에 뼈아픈 자성을 해야 할 처지임에도 되레 비판이 못마땅하다며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는가. 격을 갖춘 정권이라면 부끄러워서도 그런 말 못한다. 결국 집권세력이 품고 있는,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혁명의 유혹 때문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는 나라가 허구한 날 이렇게 나뉘고 싸우면서 갈 수 없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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