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왜 ‘개혁불안’인가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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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정권의 최대 과제는 뭐니 뭐니 해도 오랜 관행적 폐해에 찌든 한국적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 지난 대통령선거의 가장 절실한 메시지다. 여기에 여당이나 야당이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정치권 모두 지난 대선에서 정치개혁을 바라는 민심의 강도를 뼈아프게 체험했다고 본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정치개혁에 성공하려면 야당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집권 초부터 야당과 등을 돌렸던 김대중 정권이 얼마나 험한 기복을 거듭했는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납득할 만한 정치개혁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이젠 야당도 무턱대고 엇나갈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야당이 박수를 보낼 때 국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다른 개혁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구호의 시대는 지났다. 함께 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통합의 첫걸음도 바로 여기서부터다.

▼혁명적 분위기의 함정▼

그런데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사회가 이미 대단히 복잡하고 다원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일수록 일도양단(一刀兩斷)식으로 단순화해 정리할 때 그 부작용은 심각해진다. 노무현 정부 출범에 따른 본보 여론조사에서 ‘국정기대’가 84%에 이르면서도 사회 정치 외교 경제분야의 ‘개혁불안’에 많은 사람이 응답한 것은 일도양단식 개혁에 대한 우려가 나타난 것이다. 새 정부 출범에 왜 쓴 소리냐 하겠지만 새 정부가 추구하려는 개혁의 틀 속에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함정요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민심의 이반이다.

왜 일도양단이란 말이 나오는가. 대선 때부터 대통령 주변에서는 ‘노무현식 개혁’에 반론을 펴는 사람들은 ‘반개혁’으로 몰아붙였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반시대적 수구세력으로 매도했다. 비판은 ‘흠집내기’로 몰았다.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혁의 내용이나 시기에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엔 많은 시간과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예다. 그것을 일원화된 시각에서 획일적 기준으로 재단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혁명운동으로 바꿔 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새 정부도 군중폭력 등의 과격한 방식으로 기존 제도와 권위를 전복시키는 혁명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만에 하나 ‘너 죽고 나 살기식’의 이분법적 개혁을 추구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사회적 충돌은 격화되고 엄청난 규모로 번질 수 있다. 무엇보다 불안해진 민심이 따르지 않는다. 특히 각 분야의 개혁대상을 이념지향적 시각으로만 바라볼 때 표적은 분명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단순화 작업이다. 그 경우 사회 일각에서 분노와 원망이 증폭되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계급투쟁의 양상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개혁을 투쟁으로 변질시킬 이유는 더더욱 없다.

‘개혁불안’의 또 다른 이유는 급진성에 대한 우려다. 대통령 주변엔 상당수 ‘민주화 투쟁’경력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386세대’를 포함해 권위주의 시절 사회정의를 수호하겠다며 그들이 표방한 도덕적 동기나 신념을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투쟁맹신’서 벗어나야▼

문제는 ‘투쟁맹신’에 빠질 때 기존 체제에 맞섰던 그들의 저항성이 이제 개혁을 앞세워 분출하면서 조성될 투쟁적 분위기다. ‘투쟁맹신’에서 비롯되는 오만과 편견도 경계 대상이다. 한번 습득한 이념적 지향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개혁 엔진을 구성할 경우 일체감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독단으로 흐를 개연성도 높아진다. 시야가 좁아지고 활력도 떨어질 수 있다. 그 결과 나타나는 ‘대통령 사람들’의 국제경쟁력을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또 ‘참여정부’가 빚어낼 수 있는 ‘동원정치’에 대한 우려도 있다. 국정에 국민 의사를 수용한다는 의도라지만 정치적 궁지에 몰리면 군중 정서를 끌어들이는 동원정치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 온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통합이 아니라 분열이다. 또 다른 패권주의다. 새 정부도 이쯤 되면 ‘개혁불안’ 해소책을 찾아 나설 것으로 믿고 싶다.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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