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박세일/對北정책 개방에 초점을

  • 입력 2002년 2월 19일 18시 05분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중국 등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들이야 그들 나름의 계획이 있어 움직이겠지만, 북한문제에서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목표는 무엇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근세 초 독립신문의 한 사설에는 ‘세상에서 불쌍하다, 불쌍하다 하여도 진정으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조선의 여편네들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요즈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국민과 민족이 있다면 이는 북한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라고 생각한다. 오죽 굶고 먹지 못했으면 사람들의 키가 줄어드는가. 어째서 간단한 병도 약이 없어 치료를 못하고 죽어 가는가. 어떻게 세상불만을 이야기했다고 전범수용소에 가야 하는가. 그런데도 개선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동포의 고통 고려해야▼

이 세상에서 북한 동포의 문제를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미국인가 중국인가. 바로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 같은 민족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문 TV 등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수많은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북한 동포들을 ‘가난과 굶주림과 독재’에서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가가 논의의 초점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사일 문제, 남북대화, 북-미대화 다 중요하지만 이들 논의는 북한동포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허구일 뿐이다.

명백한 것은 현재의 북한 정치 경제 체제로서는 도저히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대로 가면 고통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따라서 체제의 개혁과 개방이 시급하고, 이를 앞당기는 길만이 북한 동포를 살리는 길이다. 반대로 현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길은 북한동포를 죽이는 길이다.

여기서 우리가 택하여야 할 목표와 원칙은 명백해진다. 모든 대북 정책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앞당기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미국도 중국도 우리 민족의 영원한 우방이 되려면, 이 방향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온건이냐 강경이냐는 방법론에 불과하다. 목표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변화를 위해선 온건도 좋고 강경도 좋다.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 어떤 것이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는 고도의 정보력, 객관적 과학적 분석력,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편향된 이념이나 개인적 희망사항을 가지고 떠들 문제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인질을 붙잡고 날뛰는 조폭을 다루는 방법에도 온건책과 강경책이 다 필요하다.

다만 온건책을 쓴다고 조폭에게 힘을 보태고 기를 살려주어도 안 되고, 강경책을 쓴다고 불필요하게 강포하게 만들어 인질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

어느 경우든 괴로움은 이미 볼모가 되어 있는 우리 동포들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북에 사는 동포들의 이해관계에서 한반도 문제, 동북아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명백한 것은 폭력을 두려워해서는 폭력을 제압할 수도, 개과천선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힘의 압도적 우위가 있을 때 그들은 폭력의 사용을 포기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반드시 망했다.

▼强-穩 적절한 조화 필요▼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는 민족이나 국가가 평화를 유지한 경우도 없다. 평화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력과 임전무퇴의 확고한 정신력이 있을 때에만 평화는 지켜지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가 지켜진 것은 결코 북의 자애심 때문이 아니다.

사실 북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남북의 우리 민족이 함께 가야 할 험하고 어려운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남한의 엄청난 희생과 지원이 있어야 북한의 개혁 개방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과 소비수준을 상당 기간 크게 낮추어야 북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이 어려워도 해 내야 하는 것이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우리 민족의 공업(共業)이고 공원(共願)이다.

이 운명과의 싸움에서 우리 민족이 과연 승리하느냐 못하느냐에 우리들과 우리 자손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 문제는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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