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뮤직 박스

  • 입력 2000년 11월 2일 11시 32분


▽<뮤직 박스>(The Music Box, 1989)▽

감독: Costa Cabras

출연: Jessica Lange, Armin Mueller-Stahl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미국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이 만년의 수작 『바보 윌슨』(1894)의 종장에서 내린 결론이다. "미국에서 공무원이 뇌물을 먹으면 감옥에 간다. 그런데 한국에서 고관이 뇌물을 먹으면 미국에 온다." 비행이 드러난 전직 고관의 도미 행각을 비꼰 쟈니 윤의 재담이다. 많은 사람이 미국을 동경한다. 동경하지는 않아도 때때로 요긴하게 이용한다.

미국은 이민으로 탄생한 나라이며 이민으로 성장, 발전하는 나라이다. 미국의 법제는 미국 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미국시민이 될 예비자라는 전제에 서 있다. 영화 '뮤직 박스'는 어두운 전력을 감추고 미국으로 도피한 사람의 거짓된 삶의 이야기다. 어두운 과거사 때문에 가족간의 신뢰가 무너진 불행이 이야기이며, 미국이 타국일 뿐인 이민 1세대와 당당한 자신의 조국으로 가진 2세대 사이의 가치관의 충돌을 조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이크 라슬로는 2차 대전 후 공산정권을 피해 헝가리에서 이주한 노인이다. 미국에서 출생한 딸 앤과 외손자 미키와는 더없이 가까운 사이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다. 미주 순회에 나선 헝가리 민속예술단의 공연장에서 공산정권을 비방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어느 날 라슬로에게 법무성의 소환장이 날아든다. 시민권을 박탈하고 헝가리에 추방하여 전범재판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시민권의 취득을 위해 제출한 귀화 신청서에 자신이 과거 히틀러 치하의 헝가리에서 악명 높은 경찰 특수부대원이었던 사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딸 앤은 형사사건 전문변호사이다. 이민사건에는 경험도 없다. 일급의 전문변호사를 고용하여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혀내겠다고 위로하나 아버지는 딸이 직접 변론에 나서야 한다고 고집한다. 유럽적 정서와 미국적 전문 직업의식의 차이다. 측근과 전문가들이 극구 만류했지만 앤은 아버지의 청을 받아들여 사건을 맡고 이에 전념하기 위해 자신의 법률사무실을 휴직한다. 아버지를 신뢰하다 못해 존경하는 앤은 이 사건은 아버지의 반공 활동 때문에 본보기로 처단할 목적으로 부다페스트 공산정권이 위조서류를 통해 조작한 것이라고 믿는다.

시카고의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된다. 유대인 판사의 냉정하고도 침착한 진행이 더욱 앤에게는 무거운 위협이다. 검사 버크는 라슬로가 문제의 테러단원임을 입증하는 당시의 신분증과 서명을 증거로 제출한다. 필적 감정인도 귀화신청서에 기록된 라슬로의 서명과 동일하다고 증언한다. 일련의 증인심문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살육의 현장에 라슬로(당시 이름 미시카)가 얼굴에 긴 칼자국이 난 상관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한다. 아비를 죽인 후 절규하는 어린아이까지 총으로 쏘았고 고문과 부녀자의 강간을 밥먹듯 즐겼으며 유대인을 대량으로 학살하여 다뉴브강에 내던졌다고 증언한다.

앤은 탁월한 반대심문을 통해 증인들의 신빙성을 탄핵한다. 검찰 측 증인중 한 사람은 아들이 부다페스트의 공산당 간부임을 밝혀냈고 또 다른 증인은 먼저 증언대에 섰던 사람과 입을 맞추기 위해 예행연습을 했음을 고백했다. 앤은 망명한 전직 KGB 요원을 증언대에 세워 KGB는 전쟁범죄에 관련된 서류를 위조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며, 부다페스트에서도 이러한 작전을 여러 차례 수행한 적이 있다는 증언을 얻어낸다.

판, 검사와 변호사는 비행기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날아간다. 병상에 최후의 순간이 닥쳐 온 증인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 또한 라슬로가 바로 인간 백정 미쉬카임에 틀림없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앤은 정체불명의 여인이 건네준 서류에 근거하여 증인의 신빙성을 탄핵한다. 즉 바로 그 증인은 이전에도 두 차례나 다른 사람들을 미시카라고 지목했다는 사실이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판사는 라슬로의 증언도 듣기 전에 사건을 각하하고 이로서 사건은 공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앤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의문을 풀기 위해 사람을 찾아 나선다. 한 동안 티보르 졸라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수표를 보냈던 것을 기억했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 많은 액수를 보내느냐고 묻는 엔에게 아버지는 필요 이상으로 강한 질책을 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앤이 찾은 사람은 바로 티보르의 누이동생이다. 그녀의 집 응접실 벽에 아버지와 티보르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본다. 얼굴에 길다란 칼자국이 있는 바로 그 사내가 티보르가 아닌가? 누이동생은 오빠가 죽기 전에 보낸 유품 중인 종이쪽지를 하나 내 보인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뮤직 박스를 잡힌 전당표이다. 시카고에 돌아와 뮤직박스를 되찾은 앤은 그 속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발견한다. 증인들이 말하던 그 잔혹한 장면들이 실제로 아버지에 의해 자행되는 생생한 증거가 아닌가? 아버지는 철저하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부녀는 심한 논쟁을 벌인다. 유럽에서의 어두운 과거는 대서양 바다에 사장시키고 아메리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신은 새로운 인간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이다. 그러나 딸은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이라도 털어놓고 참회와 회개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 인간의 도리였다는 것이다. 매순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세월을 넘긴 전쟁세대와 한가로운 일상의 평화 속에 살고 있는 법의 세대 사이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냉정한 법의 관점에서 볼 때 앤의 불행은 존경하는 아버지의 사건을 수임한 데서 기인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기대는 법률가의 기대가 아니라 맹목적인 기대였던 것이다. "가족의 사건을 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칙이다."라는 동료 변호사들의 말속에 미국적 정의감과 전문적 직업의식이 제시되어 있다. 진실보다는 의뢰인의 최대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변호사의 임무이다. 아버지의 사건은 바로 자신의 사건이다. 정직과 진실만을 믿고 사건을 맡으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협상'이라는 미국의 소송절차의 핵심제도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번민 끝에 앤은 변호인으로서의 도리 대신에 양심적 인간으로서의 길을 택한다. 그리하여 문제의 사진들을 검사에게 보내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Joe Eszterhas는 항가리 태생으로 네 살 때 미국에 이민왔다. 어린 시절 자신의 세대가 공통으로 가졌던 의문은 아버지는 "그때에 무엇을 했을까" 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디 미국 이민자에게만 한정된 문제이랴?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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