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나의 사촌 비니'

  • 입력 2000년 6월 21일 18시 54분


▼나의 사촌 비니 (My Cousin Vinny, 1992)

감독: Jonathan Lynn

출연: Joe Pesci/ Maria Tomei 모나리사 비토 ▼

코메디의 본질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인간의 흉리(胸裏)에 담긴 어둠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있다. 허파가 찢어지는 웃음 뒤에 절로 따르는 눈물, 그 생리적 눈물의 이면에 담긴 진짜 눈물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투시경, 그것이 바로 위대한 코메디의 본령이다. 신화비평의 대가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r)도 명저「비평의 분석」(Anatomy of Criticism)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논하면서 희극의 본질은 늙은이로 상징되는 기성세대의 정체된 가치관이 젊은 주인공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체되는 역사의 발전을 그린 것으로 해석했다.

코메디 영화 「나의 사촌 비니」(My Cousin Vinny, 1992)는 이러한 희극의 본질을 꿰뚫어 본 수작이다. 이 영화는 1960년 대 이래 미국이 겪었던 보수와 진보와 이념적 대립과 해소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첨예한 이념의 대립이 법제도의 개선을 통해 발전적으로 해소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에서 지극히 미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뉴욕의 두 청년이 캘리포니아로 전학하기 위해 자동차로 대륙 횡단 길에 나선다. 그 길에 앨러바마를 통과한다. 슈퍼마켓에서 장난 삼아 참치 통조림 한 개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상식 이상으로 비싼 값에 대한 투정이다. 이러한 장난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여 두 사람은 살인강도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소액절도범행에 대한 자백이 살인범을 찾는 경찰의 수사의욕이 결합하고 경찰과 피의자 쌍방의 오해로 인해 사태는 심각하게 발전하나 뉴욕에서 날아온 “사촌 비니” 변호사와 그 약혼녀의 도움으로 두 청년은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싱겁다면 지극히 싱겁기 짝이 없는 줄거리의 이면에 여러 가지 심각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것은 정체된 사회의 법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세상의 발전은 개방과 참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회발전의 원리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의 지리적 배경, 플로트, 등장 인물의 성격과 배역의 선정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미국사회에서 앨러바머가 가지는 특수한 의미에 주목할 수 있다. 흔히 앨러버마는 미국의 정의의 시스템에서 사각지대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극남지역"(Deep South)의 여러 주가 그러하지만 특히 앨러바마는 조지아, 미시시피와 더불어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의 정서가 가장 강한 주이다. 자족적인 자치공동체의 원리를 신봉하는 곳으로 국제사회와 중앙권력으로부터 유리된 고립과 폐쇄의 사회이다. 연방법은 북부 양키의 법에 불과하고, 북쪽 양키의 타락과 불의가 잠입할 우려에 대한 경계의식으로 상시 무장되어 있다. 앨러바마의 고립은 지리적 환경에서도 기인한다. 영화의 벽두에 등장하는 ‘무료인분’(free manure) ‘흙 판매’(dirt for sale)와 같은 조잡한 간판이나 자동차를 보고 짖는 개, 놓아먹이는 닭, 새벽 5시 30분에 기침시간을 알려주는 올빼미와 제재공장의 경적소리, 지진을 방불케 하듯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을 내면서 새벽에 질주하는 화물용 기차, 이 모든 것이 현대문명의 중심에서 벗어난 “삼라(森羅)가 구적(俱寂)”인 은둔지이다. 검사실에 비치된 컴퓨터나 자동차에 설치된 이동전화가 오히려 지극히 이질감이 드는 곳이다.

도시문명으로부터의 유리는 국제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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