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美-쿠바 갈등이 낳은 '엘리안 문제'

  • 입력 2000년 4월 26일 18시 57분


미국에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이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된 주인공은 여섯살의 천진난만한 꼬마 엘리안이다. 22일 새벽 미국 연방정부의 무장 특공대가 마이애미의 친척집을 급습해 엘리안을 친척들로부터 강제로 데리고 가 워싱턴에 머무는 아버지와 상봉시켰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엘리안을 둘러싸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가? 왜 엘리안 문제가 미국 대통령선거의 쟁점으로까지 떠오르는가?

작년 11월 엘리안은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밀입국하기 위해 쿠바를 떠났다. 마이애미 해안에 도착하기 직전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 어머니를 잃고 고무 튜브에 의지한 채 바다를 떠다니다 이틀만에 다른 두사람과 함께 극적으로 구조됐다.

미국 정부는 아버지가 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엘리안을 쿠바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플로리다 주민 60% 이상이 엘리안의 송환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엘리안을 어떻게 돌려보낼 것인가였다.

마이애미시에는 80만명이 넘는 쿠바계 미국인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 1959년 정권을 장악한 카스트로를 피해 미국에 망명한 반(反)카스트로주의자들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카스트로 정권을 넘어뜨리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엘리안은 죽음의 파도를 넘어 자유의 땅 미국에 상륙한 어린 ‘자유투사’이다.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한 ‘어머니의 뜻’은 엘리안을 자유롭고 풍요로운 미국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엘리안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엘리안을 공산 독재의 나라 쿠바에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쿠바계 미국인이 장악하고 있는 마이애미시 정부는 연방정부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다. 쿠바계 미국인들은 엘리안이 머물고 있는 집 주위에 인간 사슬을 형성해 강제 구인을 저지했다. 그러한 복잡한 구도 속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겹치면서 표를 의식한 어느 정치인도 플로리다주, 특히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쿠바 출신들의 표를 무시할 수 없었다. 플로리다는 선거인단이 25명으로 캘리포니아(54명) 뉴욕(33명) 텍사스(32명)에 이어 네번째이며 쿠바계 미국인이 전체 유권자의 15%를 차지한다. 고어는 플로리다 유권자를 의식해 정부와 민주당론을 버리고 ‘엘리안 송환반대’를 명확히 했다.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바다를 건너는 도중 반수 이상이 목숨을 잃는데도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가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왜 쿠바를 떠날까? 어쩌면 엘리안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60년대 초부터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바 봉쇄정책을 취해왔다. 이로 인해 지난 40여년간 쿠바는 수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쿠바인들의 불법이민을 부추기는 ‘쿠바 조정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으로 오는 어떤 쿠바 불법이민도 즉각 ‘피난권’을 획득할 수 있고, 미국체류 1년 후면 합법적인 영주권을 얻는다. 합법적인 이민은 엄격히 제한하지만 불법이민은 언제든지 받아들이는 모순적인 정책은 그 어떤 국가의 불법이민에게도 준 적이 없는 엄청난 특혜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다. 사실 해류상으로 보면 쿠바 북부에서 배를 타고 145㎞를 항해하면 자연스럽게 플로리다 남부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40년간 미국은 철저하게 쿠바를 봉쇄했지만 카스트로 정권은 붕괴되기는커녕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국에 대항해 꿋꿋이 버티고 있다. 이제 미국은 대 쿠바 봉쇄정책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바계 미국인들은 그것을 원치 않고 있다. 그 갈등이 표출된 것이 바로 엘리안 문제이다.

[송기도=전북대 교수·중남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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