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배수아]서울-베를린 익스프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배수아 소설가
배수아 소설가
짧고 명쾌하며 위트와 우수가 넘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 ‘도쿄-몬태나 익스프레스’의 첫 번째 글은 체코 프라하 상류층 출신 음악가 요제프 프란츨에 대한 것이다. 그는 1851년 미국으로 왔으며, 자신의 본래 세계인 콘서트와 너무도 동떨어진 캘리포니아로 금광을 찾아 떠났다가 1875년 눈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브라우티건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출발해 프란츨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슈베르트와 베토벤을 연주하던 프란츨은 도대체 왜 미국으로 왔을까?(물론 당연히 아무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다) 왜 사람은 간혹 자신의 세상 바깥의 경계 너머로, 그야말로 끝까지 가-버-리-는 걸까?

나는 독일에서 시간과 돈이 허락할 때마다―대개의 경우는 늘 돈보다는 시간만이 훨씬 넉넉했지만, 2011년 여름 다행히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게 돼 참으로 드물게도 두 가지가 동시에 넉넉할 수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 목적지는 주로 이미 죽은 작가들이 여생을 보낸 작업실이 있는 작은 마을과 도시들이었다. 괴테나 슈토름처럼 유명한 작가도 있었고 비란트나 클라이스트처럼 비중에 비해서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작가도 있었다. 전 시대의 작가들이 빽빽하게 기록해 놓은 육필일기와 편지들, 원고와 책상, 필기도구와 수집품들이 작은 전시실에 진열되어 있고 학위논문을 쓰는 학생들 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것 같은 문학 유적지들을.

기차 여행하며 나무들 바라봐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기차에 앉아서 금방 눈이 내릴 듯이 흐릿한 회색빛 겨울 대기 속에서 마치 사라져가는 어떤 뒷모습처럼 들판에 나무들이 서 있는 단조로운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무겁게 짙은 청회색 하늘에는 저물어가는 황금색 태양이 가라앉아 있다.

이런 여행 중에 나는 비로소 제발트의 독일 산문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신(scene)들이 기차와 기차역과 역사와 역사의 드높은 둥근 돔, 그러한 건축물들이 주는 무생물의 무한한 인상, 자연과 역사, 개인과 시대가 한꺼번에 회오리처럼 솟아나는 제발트식 풍경화, 가난한 여행자들의 호텔과 거리와 광장, 그 거리에서 마주친 자신의 환영과 비전으로 이루어진, 갑작스럽고 낯설고 우아하고, 이방인의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의 시선이 기록한 글,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지지 않는 것을 한없이 멀리 돌아가면서 둘레를 서성이는, 글 쓰는 여행자의 비경제적인 발걸음들을.

북독일의 평원을 달리는 기차에서 나는 항상 일정한 간격으로 지극히 독일적으로 서 있는, 자연물 중에서 아마도 사람의 모습과 가장 흡사해 보이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무의 육체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뿔 모양의 나무와 부채 모양의 나무가 있으며, 타오르는 횃불 모양과 완벽한 대칭의 기하학적 모양, 군락을 이루는 나무와 고독한 나무가 있고, 잔가지들이 석양빛 하늘을 배경으로 갈색 레이스처럼 퍼진 여성적인 모양, 편평한 들판 한가운데서 짙은 초록의 나무숲이 촘촘하게 모여서 하나의 섬을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광경, 흐릿하고 희박한 농도의 나무와 당당하고 짙은 초록을 자랑하는 전나무, 축축한 겨우살이들이 커튼처럼 늘어진 늙은 나무와 숲을 이루면서 숲 자체인 나무, 그리고 안개의 바다에 가라앉은 듯 가물거리며 흐릿하게 멀어져가는 저지대의 나무들.

베를린으로 돌아온 나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나는 늘 그렇듯이 나무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불꽃 모양으로 활활 타오르는 나무와 부채 모양으로 퍼진 온화한 나무, 죽은 나무와 마녀의 손톱나무, 빗자루나무, 손가락을 불타게 했던 가시나무, 노란색 유채밭,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 핀 붉은 양귀비꽃을. “그것뿐인가?” 하고 상대편이 다시 물었다. 너는 나무를 관찰하는 식물학자도 아니고, 나무에 관한 글을 쓰려고 계획한 것도 아닌데 나무들만 보았단 말인가.

각양각색의 모습은 사람들과 흡사

요제프 프란츨은 금광을 찾아 떠났지만 금이라고는 한 톨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성공한 금광업자를 위해 요리사로 일했으며 그가 두 번째로 길을 떠났을 때 골드러시는 이미 한참 전에 유행이 지나 있었다. 그가 남긴 것은 일기뿐이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어쩌면, 언젠가, 막연하게도, ‘서울-베를린 익스프레스’라는 글을 쓰게 될지도 몰라” 하고 나는 상대편에게 대답했다.

배수아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