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박종호]깨어나라, 한국오페라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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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거짓말처럼 물러가고 아침저녁의 공기는 가을이 머지않았음을 일러 준다. 오페라계(界) 역시 온 유럽을 달구었던 뜨거운 여름 페스티벌의 열기가 물러가고, 가을 시즌 개막을 위한 한두 달의 휴식 겸 준비 기간에 들어간다.

원래 유럽의 오페라는 시즌제로 공연을 한다. 가을에 공연이 시작돼 이듬해 봄에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프 시즌인 여름에 몇몇 공연을 모아서 하는 특별 행사를 ‘페스티벌’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의미의 ‘축제’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잔치의 개념으로 시작했던 페스티벌이 최근에는 오히려 시즌 중의 공연을 능가하는 수준을 보이며 세계 오페라의 흐름을 선도하게 됐다. 여기에는 시즌 중 오페라 극장에서보다 더 실험적인 연출, 더 많은 스타들의 출연, 고급 오케스트라의 참여 등이 원동력이 됐다. 페스티벌마다 유수 기업이 스폰서로 나서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까닭이다. 기업은 페스티벌의 인기와 가치에 기댄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니, 결과적으로 기업의 지원과 관객의 호응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고 보면 되겠다.

최근 주요 여름 페스티벌은 부쩍 수준이 높아져 몇 년 사이에 유례없이 높은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올여름 잘츠부르크, 루체른, 엑상프로방스, 바이로이트 등에서 열린 페스티벌은 다수의 공연이 거의 만석(滿席)이었다.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몇몇 공연을 기폭제로 해서 전 세계의 관객이 오페라하우스로 몰려들고 있다.

올해 잘츠부르크에서 선보인 ‘마탄(魔彈)의 사수’나 ‘벤베누토 첼리니’는 현재의 오페라 무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보여 주었다고 할 만큼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물론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몇몇 스타가 출연했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기발한 연출, 세련된 무대미술, 놀라운 연주,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 등이 인기의 밑바탕이 됐다. 바야흐로 유럽 오페라계에 새로운 부흥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국내에서도 가을을 맞이해 경향(京鄕) 각지의 공연장이 오페라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이곳저곳에서 일제히 막을 올릴 것이다. 한국에서 오페라가 공연된 지도 벌써 60년이 돼 간다. 그동안 국내 오페라는 사실 몇몇 인사의 아낌없는 열정과 지원으로 이만큼의 성장을 이뤘다. 우리 성악가들의 수준도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통할 만큼 크게 발전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오페라를 찾는 국내 관객은 무대에 감동하고 열광하는가. 물론 뛰어난 공연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공연이 많다. 간혹 누구를 위하여 그런 공연을 올리는지 알 수 없는 경우마저 있다. 선전하고 홍보하는 것처럼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였다면, 품질과 감동도 거기에 걸맞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에 관한 한 아직도 ‘국내의 열악한 환경’이나 ‘이만큼 만든 것도…’ 등의 변명을 붙이는 게 현실이다. 뮤지컬이나 영화를 두고는 세계 수준과의 겨룸을 당연히 이야기하는 시대에, 왜 오페라에 대해서는 ‘한국만의 잣대’가 쓰여야 하는가.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관계자들의 열정과 수고에 무조건 애정 어린 박수를 치던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는 이미 커다란 하나의 무대다. 오페라 제작자들은 유럽의 객석에서 적지 않은 한국 관객을 볼 수 있고, 영상 미디어의 발전으로 국내 관객도 세계 수준의 안목을 지니게 됐다는 점을 만드는 이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한국적 현실을 감안해 달라는 말로는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없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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