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조용신]공연티켓, 거품과 할인의 악순환

  • 입력 2007년 5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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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공연 티켓을 싸게 얻어 달라는 청탁을 가끔 받는다. 큰 어려움 없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다.

공연 기획사들은 대부분 적게는 10%, 많게는 50%에 이르는 할인 마케팅을 한다. 장기 공연 중인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나 무술 퍼포먼스 ‘점프’ 같은 경우는 할인 항목이 무려 10가지가 넘는다. 관람객의 나이, 신분, 관람요일, 동행인 수, 신분증에 포함된 특정 숫자 등 기상천외한 이벤트 할인 마케팅을 거의 연중무휴로 실시한다.

뮤지컬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연은 기획사 할인 전에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도 신용카드사 제휴를 통해 10∼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할인 혜택이 크지 않은 일부 공연은 아는 직원에게 부탁해 ‘직원 할인’을 받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공연 티켓을 저렴하게 구매하겠다는 청탁은, 무조건 초대권을 얻어 달라던 십수 년 전 청탁보다는 훨씬 낫다.

이른바 ‘뮤지컬 빅뱅’ 시대를 맞아 우수한 작품이 쏟아지고 관객층도 과거의 젊은 여성에서 중장년층에까지 확대됐다. 예매업체 집계에 따르면 뮤지컬이 공연티켓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장기 흥행 체제로 돌입하면 할인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 쪽에서는 티켓을 싸게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할인이 너무 흔하다 보니 제 가격을 주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이 퍼졌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티켓 가격을 낮게 책정하자니 공연의 질에 대한 의심이 생길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비싸게 책정하고 나서 예매 회사와 협상해 가격을 낮추는 것이 체면도 살리고 관객에게 할인의 즐거움도 주는 현실적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거침없는 할인 경쟁은 제작사의 수익구조를 장기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눈앞의 할인에 현혹돼 티켓을 구입한 관객은 공연을 관람하며 그 가치가 가격에 합당한지 판단한다. 그 가치와 구매한 티켓의 가격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 이후에는 티켓 가격이 조금만 비싸도 저항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티켓 할인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대형 뮤지컬 ‘라이언 킹’과 ‘에비타’가 최고가를 9만 원으로 책정해 화제가 됐다. 사실 대형 공연장의 뮤지컬 티켓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2000석이 넘는 좌석 가운데 60∼70%가 상위 2개 등급(VIP 혹은 R석)이다. 가격이 보통 12만∼15만 원의 고가라 서민들은 쉽게 지갑을 열 수 없다.

사실 뮤지컬 공연에 ‘VIP’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명품 마케팅을 추구하는 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상업적인 대중 공연 장르인 뮤지컬의 속성과 맞지 않는다. 20개가 넘는 다양한 뮤지컬이 1200석 내외의 전용극장에서 항상 공연되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의 경우 객석을 3등급으로 단순화해 빨리 예매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좌석을 주고 늦게 예매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나쁜 좌석을 배정한다. 그 대신 나쁜 좌석에는 할인을 해 준다. 이는 한 세기 이상 매일매일 객석을 채워 온 그들의 노하우다. 한국 뮤지컬도 가격 왜곡을 없애고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제 살 깎기 할인을 남발하는 ‘마이너스 마케팅’을 그만둬야 한다. 티켓 원가를 현실화하고, 제값을 주고 사면 각종 혜택을 주는 ‘플러스 마케팅’이 필요하다.

티켓을 싸게 구하는 정보를 오늘도 지인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청탁이 없어지길 바란다. 할인 고민 없이 수준 높은 작품을 적정 가격으로 쉽게 구매해 관람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공연장을 다시 찾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조용신 뮤지컬평론가·설앤컴퍼니프로덕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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