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인간의 얼굴을 가진 21세기

  • 입력 1999년 12월 24일 19시 45분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으로 학자들은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꼽는다. 혁명을 통해 인류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나타났으며 그것에 영향받아 한때는 세계인구의 절반 정도를 사회주의 국가가 통치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으뜸인 인간이 오히려 신(神)에, 돈에, 권력에 지배받고 종속되어 있는 것을 잘못이라고 보고, 인간을 그 잘못된 지배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뜻이었다.

▼ 무자비한 경쟁의 시대 ▼

그러나 옛 소련에서 보았듯 공산주의 1당 독재 체제 아래서 인간은 해방되기는커녕 보다 더 철저히 억압되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 스스로부터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그 힘 앞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20세기가 끝나기에 앞서 거의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짐으로써 발생한 공백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가 재빨리 메웠다.

인간의 자유와 창의력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의 혁신을 통한 효율성을 강조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특히 정보통신과학의 혁명적 발달에 힘입어 지구 전체를 자신의 단일 시장으로 통합해 가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무자비한 경쟁을 합리화하고 따라서 약육강식과 자연도태 및 적자생존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찰스 다윈적 생물관에 바탕을 둔 신(新)자유주의가 패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 많은 나라들은 ‘티나’(TINA·There Is No Alternative), 즉 ‘대안이 없다’는 탄식과 더불어 항복하고 있다.

이로써 20세기 후반의 주요한 논쟁들 가운데 하나였던 디클라이니즘(declinism) 대 엔디즘(endism) 논쟁은 후자의 승리로 매듭지어졌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디클라인(몰락)할 것이라던 사관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결국 인류 역사에서 엔드(최종)의 단계가 될 것이라던 사관이 현실에 부합된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확실히 이제 곧 막을 내리는 20세기는 세계자본주의의 승리, 신자유주의의 승리로 귀결됐다.

그러나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깊어질 뿐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예견했듯 20대 80의 세계, 즉 세계적 차원에서도 20%의 부유국과 80%의 빈곤국으로 나뉘고 국내적 차원에서도 20%의 부유층과 80%의 빈곤층으로 나뉘는 비정한 세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를 부르짖게 되었다.

▼ 화두는 '사림'이어야 ▼

그들은 ‘타타’(TATA·There Are Thousand Alternatives), 즉 ‘대안은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이 사람답게 잘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제3의 길’ ‘제4의 길’ ‘제5의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하의 대세는 여전히 세계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이다. 곧 시작되는 21세기에서 그 물결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정보화와 세계화가 한층 더 심화되면서 국경은 무너지고 몇몇 선진 경제대국들의 세계시장 지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도 그 과정에서 가시화 될 것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외딴 섬들 가운데 하나로 남은 북한의 폐쇄 체제를 여는 1차적 힘은 역설적이게도 ‘미 제국주의’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저항하고자 해도 별수없이 미국이 이끄는 세계자본주의의 단일 시장에 편입되게 될 것이며 거기서 남북한은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자본주의 아래서 무제한의 경쟁이 빚어낼 국제적 불평등과 국내적 빈부격차 확대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21세기의 중심적 화두는 역시 인간이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보화와 세계화, 그리고 21세기’가 새 세기를 맞는 우리의 꿈이다. 마침 1000년대의, 그리고 20세기의 마지막 성탄일이다.

사랑을 통해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찾고자 했던 거룩한 뜻이 새 세기, 새 천년대에 더 찬연히 빛나게 되기를 기원한다.

〈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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