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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최민/“왜 영화마저 험악한가”

입력 2001-11-25 18:22업데이트 2009-09-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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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부터 영하의 날씨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고 보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느낌이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올해에는 겨울이 다소 늦게 찾아온 것 같다. 기후 변동 탓인지 그만큼 가을이 길었다.

가을이라면 으레 상투적으로 ‘독서의 계절’ 운운하며 문학과 예술의 분위기를 한창 띄우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늘어난 올해의 가을은 가을이로되 가을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들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침에 신문을 펼쳐들면 너절한 싸움으로 얼룩진 국내 정치라는 것이 꼴사납고 해외 소식란으로 관심을 돌리려 해도 기분만 더 울적해진다. 광신적인 테러리스트 하나를 잡아죽이겠다고 지구상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이 마치 집단 보복살인을 결심한 듯 야만적인 전쟁을 무제한 계속하겠다고 을러대는 소식만 접하게 되니 그렇다. 이럴 때 문학이나 예술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흥이 나지 않는다.

▼전쟁… 政爭… 우울한 가을▼

정치는 국회나 정당 같은 정치판에서 직업 정치꾼들이 하는 것이고 전쟁은 별로 들어보지도 못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냥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예술이나 문학이라는 것이 사회의 집단적 삶이든지 개인의 일상적 삶이든지 우선 편안한 환경과 분위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회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잡혀 있지 않으면 좋은 예술을 감상할 기분도 생기지 않는다.

요즘 조그맣게 화제가 되고 있는 바,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한국 영화치고는 드물게 성찰적이고 깊이 있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해 일찌감치 극장가에서 축출되고 대신 무지막지한 소위 ‘조폭영화’들만 연일 관객을 불러모으며 대박을 터뜨리는 현상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어수선한데 영화까지 정신을 집중하며 신경 쓰고 볼 필요가 있겠나. 만사 깡그리 잊게 하고 무조건 웃겨주기만 하면 됐지 하는 것이 대부분 관객들의 심사인 것 같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나쁘니까 치고 받고 찌르고 죽이는 액션만이 갈채를 받는다.

힘의 논리가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예술이나 문화도 험악해진다. 아니면 윤리적으로 불감증에 빠진다. 지구 한 귀퉁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폭격당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복수와 살육으로 미쳐 날뛰는데 다른 한쪽에서 음악회나 전시회에서 품위 있게 미적 정서를 음미하는 일은 얼마나 시니컬한 행위인가.

그러나 한 나라에 엄청난 재난과 불행이 있다고 해서 그와 직접 상관없는 다른 나라의 예술행사가 중단될 수도 없고, 중단되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인간이란 냉혹하고 잔인한 것이다. 집단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점에서 예술이나 문화는 윤리와 별 상관이 없다. 서로 반대쪽에 서 있을 경우도 많다. 전쟁을 벌이면서 나치들이 열광한 것은 바그너의 오페라였다. 특히 현대예술이라는 것이 그렇고, 현대오락이라는 것이 그렇고, 현대스포츠가 그렇다. 자본이 투입되어 상업화될수록 더욱 그렇다. 기획되고 예정된 흥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현대 조직사회의 다른 분야 활동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수행적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무슨 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문화예술 분야가 일을 멈추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상관없이 그대로 계속해야 한다. 사회 각 분야의 활동 중 어느 하나도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는 빈 곳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삿속 판치는 문화계▼

윤리적 불감증이라고 감히 말했지만 실상 나 자신 윤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막연히 그런 기분이 든다는 말이다. 뚜렷한 죄의식같은 것은 아니고, 양심이나 책임감도 아니며, 사해동포적 연대의식도 아니다. 기껏해야 조금 미안하다는 감정이라고나 할까, 약간 편치 않은 마음이라고 할까, 그런 정도다.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면 쉽게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 스스로 무시해 버릴 수도 있는 미미한 감정이다. 이 좋은 계절, 나의 정서는 그렇다.

최민(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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