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권상/프리미엄… 페어플레이

  • 입력 1997년 7월 30일 20시 56분


이제는 우리말 사전에 자리잡힌 페어 플레이와 프리미엄이라는 영어낱말이 있다. 페어 플레이는 공명정대하게 승부하는 것,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요 그런 마음가짐을 뜻한다. 우리말에는 딱 들어맞는 말이 없다. 프리미엄 역시 번역은 불가능하다. 강한 자가 남보다 특혜를 누리며 유리한 조건을 갖춘채 경쟁에 임한다는 뜻이다. 가령 체중 91㎏의 선수와 51㎏의 선수 사이에 벌어지는 권투시합이라면 페어 플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프리미엄이 있는 한 페어 플레이가 아니다. 페어 플레이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뒤끝이 시끄럽다. 예컨대 법관 생활을 그만두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자 재판부가 관행대로 그에게 「전관예우」를 베풀어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면 패자는 재판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 집권세력 잦은 반칙 ▼ 반면에 페어 플레이는 인간관계와 공동체생활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온다. 이겨도 명예로운 승자가 되고 져도 아쉬움이 없는 좋은 패자로 남는다. 바로 이 스포츠맨십이 정치에 충만할 때 민주주의라는 경기가 멋있게 벌어진다. 우리는 이미 올림픽을 주관했고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스포츠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경제도 문제는 있으나 세계적으로 우등생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치만은 살벌한 후진권에서 맴도는 삼류수준이다. 건국 50년이 되는데도, 그리고 대통령을 열네번 뽑고 국회의원을 열다섯번이나 뽑았는데도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를 치르지 못해 늘 후유증에 시달린 나라, 단 한번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나라, 역대 대통령이 모조리 살해되거나 쫓겨나거나 형무소에 간 나라다. 이러고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집권세력이 압도적인 프리미엄을 누리고 페어 플레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때는 투개표부정 등 노골적인 관권선거가 판치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관(官)의 지능적 선거관여로 변하더니 이제는 천문학적인 돈이 살포되는 타락선거로 옮아갔다. ▼ 여당후보의 「투명성」 선언 ▼ 92년 대선만 하더라도 법정선거비용은 3백80억원이었으나 여당이 쓴 돈이 1조원이 넘는다는 추정이다. 여당후보의 사조직인 「나사본」에서 쓴 돈이 얼마였고 쓰다 남은 돈이 얼마였기에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보관한 잔고가 1백20억원을 헤아린다는 말일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경기의 규칙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일체의 프리미엄이 차단돼야 하고 음성적 사조직이 발붙일 수 없어야 한다. 가령 지정기탁금제만 하더라도 형식논리상으로는 별로 하자가 없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많다.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이후 1천억원이 넘는 지정기탁금이 중앙선관위에 기탁됐으나 전액이 여당으로만 흘러갔다. 그것은 합법이지만 페어 플레이가 아니다. 6.29이후 관권의 선거개입시비는 현저하게 줄었다. 자유선거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데 이론(異論)이 없다. 그러나 여야가 같은 조건에서 뛰는 「페어 일렉션(공정선거)」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례없는 집권당의 자유경선으로 법관출신의 이회창후보가 태어났다. 그는 며칠전 토론회에서 여당의 프리미엄을 포기하고서라도 정치개혁입법을 성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비쳤다. 여당후보의 프리미엄 포기선언은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명실상부하게 실천된다면 우리 정치를 페어 플레이로 승화시키는데 혁명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보의 실천을 주목하고 싶다. 박권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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