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권상/21세기 지도자의 조건

  • 입력 1997년 7월 2일 20시 25분


누구나 정치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나라를 다스리는데 적임자일 수는 없고 더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 특히 대통령직은 범상한 자리가 아니다. 다분히 권위주의적인 말이지만 「대권」이라든지 「용」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도 대통령직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 세계화 시대의 요구 ▼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벌써 예비 「용」들의 각축전이 한창이다. 어떤 지도자를 나라의 「용」으로 모실 것인가. 21세기의 문을 열 지도자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인류사상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의 대정치가 페리클레스는 ①탁월한 식견 ②설득력 ③금전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도덕심 ④애국심 등 네가지를 정치가의 조건으로 꼽았다. 2천5백년전 도시국가 아테네의 지도자 상을 그린 것인데 「세계화시대」에도 딱 들어맞는 정치가의 자질이 아닌가 싶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데 하물며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은 탁월한 경륜과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나라안팎 움직임을 포괄적으로 인식하고 국가의 안전과 세계의 평화를 향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북녘땅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통합시킬 역사적 과업을 안고 있고 국경없는 「지구자본주의」시대의 문턱에서 무자비한 경제전쟁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륜과 식견을 국민에게 설득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에서도 「교언영색」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침묵이 금」일 수는 없다. 지도자는 대중을 이끄는 힘이 있어야겠지만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는 친화력도 필요하다. 정치란 만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조직을 움직이고, 그럼으로써 권력을 잡고 행사하는 것이다. 청교도적 금욕주의가 가치판단의 기준일 수는 없다. 배금주의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돈이 없다는 것이 만악의 뿌리」라는 버나드 쇼의 익살은 맞다. 그러나 돈을 사리사욕의 차원에서 챙긴다면 그것은 장사꾼이 할 짓이지 정치가로서는 자살행위다. 우리 사회에서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비상한 도덕적 용기를 요한다. 이 시대는 그런 지도자를 원한다. 끝으로 애국심인데 오늘날 애국심이란 완고한 쇼비니즘도 아니고 식민지시대에 몸에 뱄던 내셔널리즘도 국제주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윈스턴 처칠의 말마따나 「옳은 정치가는 개인보다 당을, 당보다는 나라를 생각한다」는 공선사후(公先私後)차원의 애국심은 정치가의 불가결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 화합형 리더십 갖춰야 ▼ 이상 네가지 조건에 덧붙일 절실한 조건이 있다. 21세기를 여는 지도자는 나라의 발전과 개혁 등 확고한 목표를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독주 독선형이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흔연히 반대파와 타협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도량있고 덕망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우리는 건국후 50년간 거의 예외없이 「제왕적 대통령」의 통치속에 살아왔다. 나라를 만들고 전쟁을 치르고 경제를 일으키는데 단호한 지도자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영웅에게 나라 운명을 맡길 시대는 갔다. 그동안 한 사람의 독단에 나라가 움직이는 「동원형」리더십으로 내각 의회 정당 등 민주적 정치제도가 빛을 잃고 국민을 사분오열시키고 말았다. 이제는 동원형 대신 「화합형」지도자가 나타나 지역적 계층적 사상적 불화를 씻고 여야 정치인과 국민의 능력과 지혜를 제대로 발휘시키는 통합 조정의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했으면 한다. 박권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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