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람들]만화방 이젠 「가족 오락실」

  • 입력 1998년 11월 1일 19시 59분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한 아파트촌 만화방. 주말인 31일 오후 편한 옷차림의 김모씨(38)가 초등학생 아들(8)과 함께 들어선다. 아들은 거침없이 ‘4번타자 왕종훈’을 꺼내 자리를 잡았고 김씨는 기웃거리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를 손에 쥐었다.

요즘 아파트촌 새 명물로 등장한 만화방의 모습. ‘가족’이 새로운 손님으로 자리잡고 있다.

새 고객의 주류는 30,40대 부모. 학용품 산다고 받은 돈으로 몰래 만화방에 들러 몇시간 동안 킥킥거리던 그 세대가 이제는 ‘어엿한’ 부모가 돼 자녀와 함께 만화방을 찾고 있다.

가족단위의 고객이 늘면서 아파트촌 만화방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위치. 부모 몰래 드나드는 학생들을 위해 상가 지하 등 통행인의 ‘사각지대’를 선호했던 만화방이 요즘은 눈에 잘 띄는 목 좋은 곳으로 옮기고 있다. 특히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는 현상이 주목할 만 하다. 이유는 휴대전화나 무선전화를 들고 오는 주부들 때문. 통화가 안되는 지하는 외면 당하기 일쑤다. 금년 5월 상가지하에서 1층으로 옮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만화방이 대표적인 경우.

두번째 변화는 쾌적한 실내와 장식. 어두컴컴한 조명에 담배연기 자욱한 만화방은 아파트촌에서 더이상 살아남지 못한다.

안락한 의자, 밝은 조명은 필수.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아파트촌의 B만화방은 손님마다 탁자 의자를 차지하는 ‘독서실형’. 경기 고양시의 일산 신도시 아파트에는 통유리창을 설치해 실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게 한 ‘카페형’만화방도 등장했다.

주부층과 가족이 만화방의 새 고객으로 등장했다 함은 만화방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암시한다. 단돈 2천∼3천원으로 온 가족이 몇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싸고 건전한 오락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건전한 만화도 많아요. 아이들 만화본다고 무작정 나무랄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아들과 만화방을 찾은 김씨의 말. 김씨는 “애들과 함께 만화를 보면 내 자신도 어려지는 것 같다”며 “어릴적 옛 추억이 되살아나 기분이 좋다”고 만족해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 아파트단지에서 ‘책과 사람들’이라는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익(金鍾益)씨는 “이제는 아이들이 볼 만화를 직접 골라주는 부모도 늘고 있다”며 “저질폭력 만화로부터 아이들도 보호하고 함께 즐길 수 있어 만화방을 찾는 부모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것 같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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