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눔 릴레이]<9>제주 ‘실버스타 연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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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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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수익 45만원 기부한 팔순 연극단… “할망 고치해주게 허난 나가 더 고맙주”

평균 연령 80세인 제주시 동제주사회복지관 실버스타연극단 2기 단원들이 지난해 12월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공연 수익금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동제주사회복지관 제공
평균 연령 80세인 제주시 동제주사회복지관 실버스타연극단 2기 단원들이 지난해 12월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공연 수익금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동제주사회복지관 제공
“무신 거 헌거 있댄, 폭삭 늙은 할망을 고치해주게 허난 나가 더 고맙주.”(‘무슨 일 한 것 있다고, 많이 늙은 할머니를 같이해 주도록 해서 내가 더 고맙지’라는 제주 사투리)

제주시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관장 홍주일)에서 만든 ‘실버스타연극단’의 단원인 김영순 씨(86)는 연극 활동과 기부에 동참한 게 가슴 뿌듯하다. 하루하루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 보니 남을 위해 기부를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극을 하면서 자신도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데 놀랐다고 했다.

실버스타연극단은 제주시 구좌읍 지역 노인 8명이 단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단원들의 나이는 76세부터 88세까지로 평균 연령이 80세에 이른다. 지난해 4월 오디션을 통해 2기 단원을 선발해 외부 연출가를 초빙한 뒤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연습했다. 고령이어서 연기 연습 과정은 고단했다. 대본을 몇 번씩 읽으며 대사를 외워도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렸다. 다양한 표정 연기도 서툴렀다. 연출진은 고민 끝에 연습 과정을 영상으로 찍은 뒤 이를 보여주며 수정해 나갔다.

연극 단원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한 단원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옮기는 틈틈이 대사를 외웠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간호사를 붙잡고 무대에서의 움직임을 연습한 이도 있다. 한글을 모르는 단원은 공익요원이 불러주는 대사를 통째로 외웠다. 연출팀은 단원들이 대사를 쉽게 외울 수 있도록 쉬운 어휘를 넣고 긴 문장을 줄이는 등 시나리오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23일 2기 단원들은 연극배우 자격으로 복지관 강당 무대에 올랐다. 공연 제목은 ‘못 잊어’. 노래자랑에 참여한 자매의 슬픈 가족사를 애틋한 사랑으로 표현해냈다. 미군부대에서 가수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단원이 주인공을 맡았다. 1시간의 공연이 끝나자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실버스타연극단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노인요양원, 대학병원 등에서 6차례 무료 공연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1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는 유료 공연도 했다. 이 공연에서 얻은 수익금 45만 원을 제주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실버스타연극단의 기부는 2011년 창단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1기 연극단원 10명은 유료 공연에서 얻은 수익금 42만4000원을 기부했다. 단원들은 대부분 해녀였거나 농사를 짓다 은퇴한 지역 주민이었다.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뒤 제주에 정착한 이도 있었다. 이들은 연극을 통해 다시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셈이다.

연극단장을 맡고 있는 이경식 씨(80)는 “적은 금액이어서 송구하지만 콩 한 조각도 나누는 마음으로 기부를 했다”며 “나이가 들어서도 부지런히 활동하는 단원들을 보면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도 자신감을 얻고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관 측은 올해 3월 오디션을 열어 3기 단원을 뽑는다. 단원들은 공연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 활동도 계속한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사랑의 열매#실버스타 연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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