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쪽잠 자고… ‘44t 괴물’ 한밤 고속道 시속120km 질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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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1>25t 트레일러 무박 2일 동행해보니

[시동꺼! 반칙운전] 트레일러 무박 2일 동행해보니
화물차들은 주로 심야에 고속도로를 운행한다. 교통량이 적어서 운행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오후 9시∼오전 6시 사이에 고속도로를 통과하면 ‘화물차 심야 할인’ 제도에 따라 통행료를 50% 할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을 새우면서 운행하는 이런 무박 운행은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교통안전공단이 2010∼2012년 사업용 자동차의 업종별 치사율을 분석한 결과 화물차는 100건이 발생하면 4.4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버스 2.6명, 개인택시 1.4명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 특히 속도를 높이는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사고가 나면 100건당 사망자가 16.5명에 달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도로 위의 시한폭탄’인 화물차의 반칙 운전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17, 18일 포항∼인천을 오가는 25t 트레일러를 타고 무박 2일 동행 취재했다. 기자가 화물차 심야 운행 실태 취재라는 목적과 신분을 밝히고 조수석에 앉았는데도 과속, 지정차로제 위반 같은 반칙 운전이 만연했다.

○ “안전띠 안 매고, 시속 120km 훌쩍”

17일 오후 10시 포항을 출발해 오후 11시 56분 김천 분기점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한 트레일러는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도로는 칠흑같이 어두워 속도를 가늠하기 힘든 상태. 조수석에 앉은 기자가 속도계를 확인해 보니 바늘이 시속 120km를 가리켰다. 화물차 제한 속도(90km)를 훌쩍 넘긴 과속이었다. 동행한 운전자 A 씨(51)는 “내리막길에서는 좀처럼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기름값을 아끼려 기어를 중립에 놓고 ‘타력 주행(관성에 의지한 주행)’을 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튿날 오전 1시 문경새재 인근. A 씨도 기자도 졸음이 와 몽롱한 상태였다. 그때 앞에 가던 유조차가 졸음운전을 하는지 차로 위반을 한 채 달리는 게 보였다. A 씨는 황급히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렸다. 유조차는 얼른 차로 중앙으로 되돌아갔다. 포항을 출발해 김천∼여주∼인천으로 이어진 5시간(실제 운행시간) 동안 A 씨는 졸음이 의심되는 ‘지그재그 운행’ 화물 차량 3대에 경적을 울렸다.

A 씨는 “심야에 60, 70km의 저속으로 달리는 차량은 십중팔구 졸거나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정이 넘은 시간,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3차로에서 시속 60, 70km로 저속 운행을 하는 25t 트럭을 추월하며 살펴보니 DMB를 켜 놓고 있었다. 지정차로제도 유명무실했다. 화물차들은 3, 4차로로 달려야 하지만 주로 승용차가 달리는 2차로나 추월차로인 1차로로 달리기 일쑤였다. 간간이 설치된 무인단속카메라가 과속을 단속하고 있을 뿐 어떤 ‘반칙 운전’도 심야의 고속도로에서는 통제받지 않는 듯했다.

A 씨는 운전하는 내내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 운전 경력 30년의 A 씨는 “요금소에서 경찰 단속이 있을 때 잠깐 맬 뿐, 평소에는 답답해서 매지 않는다. 다른 화물차 운전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동료 운전사에게서 전화가 오자, 그는 서슴없이 한 손을 들어 휴대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날 기자가 탑승한 25t 트레일러는 뒤에 실은 H빔 철강까지 합하면 무게가 총 44t에 육박했다. 중형 승용차의 무게가 1.5t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중형차 30대 무게의 ‘괴물’이 위험천만하게 질주한 셈이다.

○ “못 먹고, 못 자야 겨우 수지 맞출 수 있어”

교통안전공단이 7월 화물차 운전사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이들의 1일 평균 운전 시간은 7시간 56분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실제 근무시간은 이를 훨씬 웃돌았다. 짐을 싣고 내리는 시간 및 대기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A 씨의 경우 17일 오후 1시 20분부터 포항의 한 철강제조업체에서 H빔을 실으려고 기다렸지만 정작 짐을 싣고 출발한 것은 8시간 40분이 지난 오후 10시였다. 이날만 130대의 차량이 몰려 짐을 싣는 과정이 지연된 것이다.

기다림에 지쳤지만 바로 출발해야 했다. 인천 서구의 한 철골구조제작업체에 이튿날 아침까지 짐을 내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잠깐 휴게소에 들러 쉬기도 만만치 않았다. A 씨와 같은 화물차 운전사들이 몰려, 휴게소 진출입로 양옆까지 화물차들이 가득 차 주차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18일 0시 35분에 문경휴게소에 진입했지만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A 씨는 4시간을 꼬박 달려 오전 2시 10분 덕평휴게소에 도착해 눈을 붙였다. 운전석 뒤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2시간의 쪽잠을 잔 그는 오전 4시 20분 출발했다. 더 늦어지면 인천의 출근길 정체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오전 6시에 인천에 도착해 하역 작업을 마친 뒤 다시 철근을 싣고 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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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가 2박 3일간 약 1000km를 운행하며 받은 운임은 100만 원 남짓. 한 달에 11번가량 포항∼경인권을 왕복한다는 그의 한달 운임 수입은 1100만 원가량이지만, 유류비와 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손에 쥐는 돈은 350만 원 남짓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야간 운행, 저임금 등 화물차 운행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은 단기간에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DMB시청, 안전벨트 미착용 등 화물차 운전사 스스로도 잘못된 운전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인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공동 기획: 안전행정부·국토교통부·경찰청·교통안전공단·손해보험협회·한국도로공사·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tbs 교통방송
#트레일러#고속도로#화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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