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젖소 키운 지 30년” 61세 신억승 씨의 8년전 ‘안성 구제역’ 그 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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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100마리 다 죽였지 정말 자식 같다니깐 모를거요, 그 피눈물…
보상? 융자? 있긴있지 근데 그거갖고 되나 나도 한 2억 못갚았어

《8일 인천 강화군 선원면의 한 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경기 김포시, 충북 충주시로까지 확산됐다. 확산 지역이 넓어지고 발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축산농가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밤잠 못 이루고 방역에 여념이 없는 전국 축산농가들의 절절한 마음을 경기 안성시의 한 축산 농가를 통해 들어봤다. 안성은 사상 최악의 구제역으로 기록된 2002년 당시 가장 극심한 피해를 봤던 지역이다. 당시 기르던 젖소 100마리를 전부 도살 처분해야 했던 신억승 씨(61)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신 씨는 지금도 젖소 7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여보세요? 예. 제가 신억승 맞습니다. 동아일보? 신문사에서 저한테 왜 전화를 했대요? 아, 구제역요…. 그거 뭐 좋은 일도 아닌데 물어볼 게 있다고…. 예. 지금도 소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야기 들어서 뭐 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심경이야 축산하는 사람들 다 같지 않겠습니까.

아뇨, 만나는 건 좀 힘든데요.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도 비상입니다. 소 키우고 돼지 키우는 사람들끼리도 잘 안 만나요. 구제역이라는 놈이 요상해서 어디서 어떻게 튈지 모르잖아요. 궁금하신 거 있으면 그냥 통화로 하십시다.

구제역, 그게 우리 동네서 발생할 거라고는

아니, 구제역 물어본다면서 나이는 왜 물어보시나. 허허. 1949년생입니다. 올해 예순 하나. 소 키운 지는 한 30년 됐습니다. 한우도 키우다, 젖소도 키우다 했습니다. 고향은 여기 경기 안성이고요.

2002년 5월 경기 안성시와 충북 진천군에서 발생했던 구제역 상황을 보도한 당시 동아일보 지면.
2002년 5월 경기 안성시와 충북 진천군에서 발생했던 구제역 상황을 보도한 당시 동아일보 지면.
2002년도요? 그때 젖소 한 100마리 키웠습니다. 아, 그럼요. 100마리 모두 도살 처분당했습니다. 구제역 발생 농장에서 반경 500m 안에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멀쩡해 보여도 다 도살 처분 해야죠. 맘 같아서는 우리 소는 건강할 것 같고, 그래서 안 죽이고 잘 보호해서 키우고 싶지만 그게 아니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근방 다 그랬어요. 여기 안성시 일죽면이 면 단위로는 아마 전국에서 소, 돼지가 최고로 많을 겁니다. 그래서 그때 구제역으로 피해도 컸고요.

아이고 말도 마십쇼. 정신없었습니다. 구제역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우리 동네에서 발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는 축산 안 하는 사람들은 몰라요. 걸리면 그냥 끝입니다, 끝. 멀쩡하던 소도 죽어나가고, 살아 있는 소도 다 도살 처분해야 돼요.

도살 처분이 뭐냐면 멀쩡한 소, 돼지 죽여서 묻는 겁니다. 가슴 미어져요, 정말…. 안 키워보고, 안 당해본 사람들은 정말 그 심정 모릅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전기로 죽이는지 약으로 죽이는지. 안 봤어요. 눈뜨고 그 꼴을 어떻게 봅니까. 어떻게 하냐면, 공무원들이 와서 나가라고 해요. 하루 동안 농장 비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 순순히 나갑니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까.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와 보면 축사가 텅 비어 있습니다. 내가 30년 동안 소 키우면서, 축사가 비어 있는 건 그때 첨 봤습니다. 심정이요? 말해 뭐합니까…. 기가 막히죠, 기가….

왜 (축사를) 나가냐면 자식 같은 소가 죽는 것 못 보겠으니까 그래요. ‘자식 같다, 자식 같다’라고 하니깐 잘 모르겠죠? 젖소 한 마리를 보통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키웁니다. 매일같이 밥때 되면 밥 주고, 하루 두 번, 새벽이랑 저녁에 우유 짤 때 되면 가서 우유 짭니다. 정이 안 들겠습니까? 이것들이 또 얼마나 영리한데요. 주인 다 알아봅니다.

진짜지 그럼 내가 거짓말하겠습니까. 주인 발걸음 소리, 자동차 소리 다 알아들어요. 강아지랑 똑같다니까요. 밥때 돼서 주인 차 말고 다른 차가 오면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 내가 차 몰고 가면 귀신같이 알아보고 밥 달라고 난리를 쳐요. 그러니 안 예쁘겠습니까. 자식 같다는 말이 맞지요. 게다가 우유 짜서 그 덕분에 내가 먹고사는데, 그런 소를 죽여야 하니…,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찢어져요. 지금 김포, 강화에서 소, 돼지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시위하는데 그 심정 이해가 갑니다. 모를 거요. 그 피눈물 나는 심정을….

지금 김포-강화 사람들 그 심정 이해갑니다

당연히 피해가 크죠. 생업이 끝나는 건데. 게다가 재산이라고 해봤자 소가 전부인데 그 소가 다 죽어 버렸으니…. 왜 피해가 크냐면 일단 보상금이 적어요. 젖소는 2산(産), 3산한 소에게서 우유가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에 비쌉니다. 2산, 3산한 소는 마리당 보통 320만 원에서 350만 원 정도 해요. 아, 새끼를 한 번 낳으면 초산이고 두 번 낳으면 2산, 세 번 낳으면 3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 우유 많이 나오는 젖소 보상금을 고기 값으로 쳐서 240만 원, 250만 원밖에 안 줘요. 젖소는 한우, 돼지하고 보상 방식이 달라야 하는데 안 그렇거든요. 앞으로 우유 못 짜는 것까지 포함해 줘야 하는데, 안 그렇잖아요.

여기에다가 돼지, 한우와 달리 젖소는 다시 키우려고 해도 힘듭니다. 송아지를 사서 우유 짤 수 있을 때까지 키우려면 2년은 족히 걸려요. 제대로 회복되려면 한 4, 5년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2산, 3산한 젖소 사면 안 되냐고요? 되기야 되겠죠. 그런데 누가 우유 한창 잘 나오는 젖소를 팔려고 하겠습니까. 안 팔아요.

그리고, 설령 사도 별로 안 좋은 소인 경우가 많아요. 나도 다시 시작해 보려고 경기 화성에서 목장 그만둔다는 사람이 있다기에 몇 마리 사왔는데, 뭐…. 별로 좋은 소는 아닙디다. 결국 송아지 한 50마리 사서 간신히 개량해서 키웠지요.

아, 또 개량을 모르시겠구나. 뭐냐면, 젖소는 한우랑 키우는 게 달라요. 한우는 덩치 좋게 키우면 되지만 젖소는 비대하면 우유가 잘 안 나옵니다. 덩치 크면 안 돼요. 사료 좋은 거 주고 살 안 찌게 다이어트도 시켜야 하고. 우유 짜는 시간 조절하면서 서서히 소를 길들여야 하고. 그 과정이 4, 5년 걸리는 겁니다. 나도 힘들게 소 사고, 죽자 살자 개량도 하고 하니 한 70마리 정도 됩디다. 힘들었죠. 여기까지 오기도.

맞아요. 다시 젖소 살 때 정부가 융자해 주긴 합니다. 이자는 3%. 그런데 그거 못 갚아요, 다들. 젖소 다시 키울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데, 빚 갚을 능력이 생기겠습니까. 여기 일죽면에서 융자 갚은 사람 없을 겁니다. 나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봅니까. 많아요. 많다는데 참…. 한 2억 원 됩니다.

이번에 강화도에서 아주머니 한 분 돌아가셨죠?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대출 받아서 소 산 사람들은 그 소 없어지면 정말 망하는 겁니다. 뭘로 대출을 갚아요. 대출을 더 받아야 하는 판국인데…. 2002년에 당해 봤던 사람들은 그 아줌마 심정 다 이해할 겁니다.

그럼요, 힘들었죠. 내가 자식이 딸 하나 아들 하나인데, 그때 둘 다 대학교 다니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등록금에 이것저것 다 합쳐서 한 학기에 한 1000만 원 듭디다. 댈 능력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이듬해 아들놈은 결국 군대 갔습니다. 이 일대 남자애들 2003년에 군대 많이 갔습니다.

배운게 이건데 다른 것 뭘 하겠어요

지금 우리는 비상이에요. 사람 모이는 데 안 가는 건 기본입니다. 구제역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니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농장 입구에 차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소독되게 하는 것도 만들어 놨죠. 자동차 바퀴 타고도 넘어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소독도 꼬박꼬박 하고 있고요. 여기에다가 웬만하면 농민들도 면사무소 이상으로는 멀리 안 나갑니다. 그렇게 한 번 호되게 당했으니 필사적이지 않겠습니까. 우리끼리 그래요. 이럴 때 초상나면 안 된다고. 가보지도 못하니까요.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지만, 모르죠. 어떻게 될지.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그러게요. 그렇게 당하고도 참…. 물론 저도 그만둘 생각 안 한 건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고생하고 나서도 왜 또 키우느냐면 배운 게 이거라서 그래요. 30년 동안 소만 키웠는데 다른 것 할 수 있겠습니까.

아뇨. 기자 양반,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공무원들한테는 서운한 거 없어요. 보상금이 서운한거지, 공무원들한테 서운하다는 게 아니죠. 구제역 터지면 공무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요. 지금 안성에서도 방역한다고 공무원들 매일같이 2교대로 돌아가면서 도로마다 지키고 소독하고 합니다. 난리예요, 난리. 우리야 소 키우는 죄로 고생한다 치지만 그 사람들은 무슨 죄입니까. 보면 안쓰러워요.

그리고 어디 뉴스인가 보니까 농장 사람들 외국 갔다고 뭐라고 하던데, 그것도 참…. 솔직히 이해는 갑니다. 지금 우리 동네만 봐도 소 키우는 사람이 젊어야 40대입니다. 40대도 적고 그나마 50, 60대 늙은이들이에요. 평생 소, 돼지 키웠던 늙은이들이 어디 해외나 갈 수 있었겠습니까. 뭐 1000마리, 2000마리 크게 키우는 사람들은 돈 많으니 도시 젊은 사람들처럼 해외 자주 가겠죠. 그런데 우리처럼 조그맣게 하는 사람들은 다 늙은 부부 둘이 합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하고 한 달에 1만 원, 2만 원씩 곗돈 부어요.

몇 년 지나서 돈 차면 그때 비행기 한 번 타 보는 겁니다. 나도 그렇게 처음으로 (외국) 한 번 갔다 왔습니다. 우유를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짜야 하니까 함부로 농장도 못 비우고, 쉬지도 못해요. 그러다가 몇 년에 한 번 쉬는 겁니다. 물론 이제는 상황이 이러니 앞으로 가면 안 되겠지요….

아이고, 쓸데없이 말만 많이 했네. 이제 끊읍시다. 이따가 의사선생님 오십니다. 수의사요. 요새 가장 중요하고 고마운 분입니다. 우리 새끼들 아픈지 어떤지 봐주시잖아요.

아, 기자 양반. 아까 사진 말했는데 그것도 좀 그러네요. 사진 찍는다고 내가 돈 드는 일도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심각하잖아요. 요새 우리끼리도 서로 농장 안 가요. 만에 하나 모르니까, 불안해서 그래요. 한 번 당해본 사람들은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이해 좀 해주세요.

그래요. 들어가세요. 궁금한 거 있으면 또 전화하십시다. 아무튼 우리 같은 사람들 심정을 대신해서 잘 좀 써주세요. 그래서 내가 전화도 받은 겁니다. 아시겠죠?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기존 기사 형식으론 소화하기 힘든 삶과 현장을 담는 새로운 기사 형식입니다. 생생한 현실과 감성을 통해 세상사를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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