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에 사는 사람들]“ “내 통역으로 다문화 부부 오해풀 때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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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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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비코리아 자원봉사
베트남인 레티마이투 씨

“아로 베베베싯응애(여보세요 BBB입니다).”

베트남인 레티마이투 씨(24·여·사진)는 휴대전화에 비비비코리아(BBBKoea·Before Babel Brigade Korea)에서 걸려온 표시가 뜨면 이렇게 받는다. 2년 전부터 이런 전화를 하루에 서너 통씩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말이 쉽게 나온다.

레티마이투 씨는 지인의 소개로 2007년부터 비비비코리아의 통역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비비비코리아는 국내외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전화(1588-6544)를 걸면 17개 외국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 3500여 명이 24시간 대기하며 도와준다.

그는 “베트남 아내와 한국 남편이 부부싸움을 하다가 말이 안 통해 전화하는 때가 많다”며 “통역뿐만 아니라 양쪽을 이해시키고 위로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소개했다. 대부분의 전화는 부부싸움 같은 갈등이 있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도와달라는 분야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순 통역에서부터 근로계약까지 다양하다. 베트남인을 고용한 한국인 사장이나 베트남 부인과 사는 남편들도 전화를 한다. 그는 “오늘은 내일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왔다는 베트남 사람이 전화를 걸었다”며 “공항 근처에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 경찰서에서 베트남 근로자가 직접 걸어온 전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뱃일을 한다는 이 근로자는 같이 술을 마시던 한국 동료들이 바다로 밀었다면서 울먹였다”며 “낯선 땅에서 죽을 뻔할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의지할 곳도 없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레티마이투 씨는 5년 전 한국 남편을 만나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2007년부터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면서 통역봉사도 하고 있다. 그는 “비비비 일이 인권센터 일과 비슷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생활 속에서 갈등을 겪는 다문화가정 여성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한 사례를 경험할 수 있어 인권센터 상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통역으로 한국 남편의 오해가 풀렸을 때,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됐을 때, 그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봉사활동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 잠이 많아 쉬는 날에는 늦게 일어날 때가 많은데 일찍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조금은 힘들다며 수줍게 웃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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