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영어 선생님 꿈꾸는 차미진 양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조부모와 사는 다문화자녀… “학원 다닌적 없지만 영어 너무 좋아요”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 청주 봉덕초등학교 4학년 차미진이에요. 저는 아빠 엄마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어요. 아빠는 당뇨병으로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고 엄마는 먼 곳에 떨어져 사신답니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잘해주시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아서 외롭진 않아요.

제 꿈은 영어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엄마가 필리핀 출신이어서 어렸을 때 아빠 엄마와 잠깐 필리핀에 살면서 영어를 조금 익혔거든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 영어가 너무 재미있고 좋아요. 1주일에 한 시간이지만 학교에서도 영어시간이 가장 재미있고요. 집에 오면 EBS TV를 켜놓고 영어 프로그램을 보며 따라하곤 해요.

이렇게 열심히 따라한 덕분인지 1학기 영어듣기평가는 만점을 받았어요. 앞으론 듣기뿐 아니라 말하기도, 읽기도 다 잘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영어’ 하면 ‘민병철’을 떠올릴 정도로 선생님이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게 되셨나요? 저도 선생님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은데 선생님의 비결을 꼭 들어보고 싶어요.

영어를 좋아하는 미진이 올림

“스스로 찾아서 배우면 ‘1등 영어’돼”
민병철 교수의 ‘영어학습법’
인터넷-TV통해 반복하면 실력늘어 ‘학원생’ 못지않아
장학금 500만원 ‘선물’에 영어 동화책읽기 숙제도

“미진아, 너도 김연아 선수나 가수 ‘비’처럼 성공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

“네, 연아 언니처럼 멋지게 꿈을 이루고 싶어요.”

“응, 그러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돼. 미진이는 사실 쉬운 편이야. 김연아는 빙판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해야 하는데 미진이는 집에서 영어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잖아.”

“아, 그렇네요.”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병철교육그룹 사무실에서 만난 민병철 교수(59). 1980년대 TV를 누볐던 인기 영어강사이자 현재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는 그는 역시 학생들을 다루는 데 능수능란했다. 처음엔 “민병철 선생님을 만나면 다 영어로 물어봐야 하나요”라고 질문할 정도로 긴장하던 초등학교 4학년생 차미진 양(10)도 어느새 그의 옆에 앉아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영어가 재미있고 좋은데요. 선생님처럼 잘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되나요?” 미진이의 첫 질문은 ‘영어공부 비법’이었다. 지난 1학기 듣기평가에서 100점을 맞을 정도로 듣기 실력은 좋지만 학원 수업 없이 일주일에 1시간 학교수업이 영어공부의 전부인 미진이는 아직 읽기나 쓰기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TV와 라디오를 친구 삼아 영어와 친해졌기 때문에 아직은 알파벳도 낯설다.

“미진이의 공부법도 정말 좋아. 인터넷 TV 라디오 등 요즘은 영어를 굉장히 쉽게 접할 수 있거든. 보고 또 반복하다 보면 금세 영어가 늘지.” 미진이를 격려하던 민 교수는 중요한 조언을 하나 했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더, 미진이 나이 때에는 영어 동화책을 읽는 게 참 좋아. 표현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독서도 되고 말이지.”

4학년 소녀는 영어 이야기가 나오자 진지해졌다. “나도 어렸을 때 영어가 이유 없이 참 좋았어. 서대문구 신촌동 근처에 살았는데 일부러 교회의 호주 선교사들을 찾아다니며 영어를 익혔지. 그중에 한 선교사가 마침 내 또래의 아들, 딸이 있어서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 미진이를 바라보며 자연스레 옛 시절을 떠올린 민 교수는 학원도 영어 프로그램도 없던 때라 더 열정적으로 영어공부법을 찾으려 애를 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요즘엔 영어학원에 많이 다니지만 결국은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 4학년이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공부만 하면 충분히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수 있는 나이란다. 지금 반에서 영어는 몇 등 정도 하지?” “2등요. 1등은 학원 다니는 친구예요.”

미진이의 솔직한 대답에 웃음을 터뜨린 민 교수가 말했다. “내가 앞으로 꾸준히 영어 동화책을 보내줄게. 소리 내서 읽고 또 읽고 그러다 보면 곧 미진이가 1등이 될 거야.”

미진이는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이라 다른 아이와 다르게 생긴 외모 때문에 상처를 입는 일이 많았다. 또 돌아가신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어머니의 빈 자리 때문에 상심이 컸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밝게 자라고 있다. 환하게 웃으며 “꼭 1등이 되겠다”고 말하는 미진이에게 민 교수는 ‘선물’을 내밀었다. 미진이에게 5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한편 미진이가 다니는 공부방의 어려운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하라며 민병철교육그룹의 어학 콘텐츠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또 민 교수는 미진이를 다방면에서 도울 수 있도록 평소 알고 지내던 최종태 포스코 사장, 최경식 청주출입국관리소장, 멘터 역할을 할 이화여대 2학년 박신욱 씨와 함께 작은 모임을 꾸려 앞으로도 미진이의 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했다.

민 교수는 미진이를 위해 영어 동화책도 가져왔다. “자, 다음에 만날 때까지 선생님이 준 책의 단원 3개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네∼.” 미진이의 밝은 목소리에 더는 쑥스러움이 배어 있지 않았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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