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공부스타-시즌2]<23>고졸공채로 삼성에버랜드 조경관리직에 합격한 창녕제일고 3학년 정준혁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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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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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왜죠?”… “넌 ‘큰 놈’ 아닌 ‘클 놈’이니까”

《“넌 뭐가 되려고 하니? 고등학교는 갈 거야?” 경남 창녕제일고 3학년 정준혁 군(18). 중학생 때까지 그는 따가운 눈길을 받는 ‘문제아’였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어울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노래방, PC방을 전전하다 자정이 넘어서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가출도 여러 차례. 두발 단속을 하는 선생님에게 반항심을 갖고 사고를 쳐 부모님이 경찰서에 불려오기도 했다. “그땐 경찰서에서 나올 때 ‘나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다’는 묘한 우월감을 느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당시엔 저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죠….”(정 군) 이랬던 정 군이 놀랍게도 지금은 삼성그룹 입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 고졸채용을 통해 삼성에버랜드 조경관리직에 합격해 다음 달 입사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 선생님이 나를 바꿨다


사진 이성은 기자 sunmin112@donga.com
사진 이성은 기자 sunmin112@donga.com
정 군의 중학교 내신 성적 평균 백분율은 하위 79%. 전교 250명 중 200등을 오가던 그가 진학할 수 있는 지역 내 일반계고는 없었다. 등 떠밀리듯 그는 집이 있는 경남 밀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의 특성화고인 창녕제일고 조경과에 진학했다. 당시엔 ‘조경’의 뜻도 몰랐다.

정 군에게 고교입학과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학급반장이 된 것이다. 1학년 담임인 정순숙 선생님이 그를 대뜸 학급반장 후보로 추천해 당선되면서 시작된 일. ‘중학교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모두 봤을 텐데, 왜 문제아인 나를 반장 후보로 추천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는 선생님을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죠?”

정 선생님은 짧지만 놀라운 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큰 놈’은 됐고, ‘클 놈’을 뽑아.”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이 느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야릇한 느낌이었다.

“반장이 된 이상 성적도 중상위권은 되어야 한다”는 정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공부도 조금씩 책임감을 갖고 하기 시작했다. 1학년 1학기 58점이던 사회 성적은 2학기 80점으로, 69점이던 과학은 87점으로 올랐다.

하지만 학교수업을 마치고 동네로 돌아가서는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다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2학년 진학을 앞둔 2011년 겨울, 정 군은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번 전교 부회장은 우리 준혁이가 될 거다”라며 정 선생님이 그를 추천한 것.

하지만 이튿날 정 군은 가출을 하면서 사흘간 무단결석을 하고 말았다. 늦게 들어오는 자신을 아버지가 꾸중하자 홧김에 짐을 챙겨 집을 나온 것이다. 결국 가출 신고를 한 아버지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한 끝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 날 학교로 가면 크게 혼이 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 선생님은 학급 학생들에게 “준혁이가 전교 부회장 선거를 앞두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심란해진 탓에 잠깐 절에 들어갔었다”면서 정 군을 감쌌다. 정 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는 전교 부회장이 됐다.

“부모님 말고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전교 부회장이 되자 친구들은 물론 부모님도 깜짝 놀랐어요. 이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죠.”(정 군)

○ “최연소 삼성 임원 될 거예요”

책임감은 정 군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전교 부회장이 된 뒤 그는 맡겨진 일에 무섭게 몰입했다. 2학년 때는 학생회 일을 하며 1, 2학년 생활지도를 전담하다시피 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3학년 땐 전교회장이 됐다.

통학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매일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8시까지 가장 먼저 등교했다. 누가 시킨 적도 없지만 매일 아침 학교 정문에서 생활지도를 도맡았다. 학교 5월 체육대회도 직접 주도해 기획하고 추진했다. 성적은 어느덧 반 3등까지 올랐다.

정 군은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가 제작하는 고교생 주간신문인 ‘PASS’(www.weeklypass.co.kr)의 학생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연습장을 잘라 명함크기의 메모지를 만든 뒤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여기에 기사 아이템을 기록하고 문득 떠오르는 좋은 글귀를 적었다.

기사를 작성할 때는 건당 6, 7시간의 노력을 쏟았다. 총 38건의 기사를 쓰며 아무리 짧은 기사라도 ‘지면에 실리게끔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런 노력 때문일까. 학교 문학기행 소감문대회와 과학글짓기대회에선 2등을 차지했다.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는 말처럼 정 군은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일에 몰입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 그리고 삼성그룹 고졸채용에서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2만여 명이 지원한 이 채용의 경쟁률은 무려 28 대 1에 달했다.

“합격한 뒤 지게차운전기능사, 굴착기운전기능사,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토익공부도 하고 있어요. 조경관리로 인정받아 10년 뒤에는 삼성에버랜드에서 최연소 임원이 되고 싶어요.”(정 군)

※‘공부스타 시즌2’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최하위권을 맴돌다 성적을 바짝 끌어올린 학생,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대학 입학사정관전형에 합격한 학생 등 자신만의 ‘필살기’를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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