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1부]<7·끝>다문화센터 4년차 직원이 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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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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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초청해 놓고 구석자리에… 생색용 행사 많아

경기 고양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김희진 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자세로 다문화 업무를 대한다. 올해로 4년째, 자신의 도움을 받은 다문화 여성의 편지를 받으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고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경기 고양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김희진 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자세로 다문화 업무를 대한다. 올해로 4년째, 자신의 도움을 받은 다문화 여성의 편지를 받으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고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김희진 씨(32·여)의 일과는 오전 8시 반에 시작한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고양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미팅 및 상담 일정이 빼곡한 달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업의 후원을 받으려고 오전 11시에 사무실에서 공기업 담당자를 만났다. 1시간 정도 회의하는 동안, 유선 또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 방학 때보다는 덜한 편이죠. 이런저런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아 거절하기가 힘들어요.” 이 센터는 다문화가정과 관련된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기관. 고양시는 관내 외국인이 3000명을 넘으면서 다문화사업의 필요성을 느낀 뒤 일단 민간에 맡기고 운영비를 지원키로 했다. 김 씨는 센터의 상근 직원 3명 중 한 명. 2008년 3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4년차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뒤 종합복지관에서 청소년복지 업무를 맡았다. 대학원에서 상담복지를 공부하다 다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직원을 채용한다기에 센터로 옮겼다. 》
○ 다문화 관심은 높아졌지만…

김 씨가 추진하는 다문화 관련 사업은 14개 분야에서 30여 개에 이른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행사가 주말에 많이 열려 한 달에 2번 정도 휴일 근무를 한다. 추가 수당은 받지 못한다. 계약조건상 기본급 외에는 수당이 없어서다. 센터장은 기본급도 없이 활동비만 받는다. 지난해 말 회계담당 직원이 그만뒀지만 월급(150만 원)에 맞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3개월 가까이 빈자리다.

사무실 여건도 열악한 편이다. 센터의 연간 예산은 약 1억 원. 인건비를 제외하면 사무집기나 용품을 구입하는 데 쓸 수 있는 돈은 200만 원 정도다.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거나 상근 봉사자를 구하더라도 책상을 새로 구입하기엔 빠듯하다.

이곳에서 쓰는 컴퓨터 5대는 지난해 고양시가 폐기하려던 제품이다. 김 씨는 “일반 서류 작업은 가능하지만 회계업무 같은 복잡한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며 “고장이 나도 비용 때문에 수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출장 중에 택시를 타면 김 씨가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가정폭력을 피해 한밤중에 피신한 결혼이주여성을 여관에 머물게 하면서 숙식비를 대신 내줬다. 차량을 지원받아도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다.

○ 밀려드는 협조 요청에 몸살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행사에 다문화가정을 참석시켜 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었다. 공문이나 전화를 통해 한 달 평균 200건가량 접수된다. 문제는 단순히 행사장의 자리를 채울 목적으로 다문화가정의 참석을 원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많다는 점. 지난달에는 음악 단체가 공연을 이틀 남기고 “사람 좀 모아 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참석자를 어렵게 모아서 가보면 무대조차 보이지 않는 구석자리에 앉히는 등 푸대접을 받을 때가 많다. 김 씨에게 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다문화가정을 지원한다면서 큰 혜택을 베푸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곳이 많다”며 “시일이 촉박하게 요청을 하거나 행사장에서 소홀하게 대해 실망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늘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다. 다문화 업무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한다. 하지만 다문화센터협회비(1인당 월 3만 원)도 내기 빠듯한 현실에는 한계를 느낀다.

개인적 어려움도 있었다. 2009년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며 황반변성에 걸렸다. 눈 망막 신경조직인 황반에 이상이 생겨 시력이 나빠졌다. 현재는 모두 완치됐지만 오른쪽 눈의 시력이 조금 약한 편이다.

하지만 표정은 언제나 밝다. 그는 “현장 실무자가 행복해야 다문화가정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문화센터 지원을 조금만 더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 현장 중심의 다문화 거버넌스 필요

현장 여건은 열악하지만 김 씨는 센터 근무에서 많은 행복을 느낀다. 지난해에는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다문화공헌 개인부문)을 받기도 했다. 김 씨 덕분에 어려움을 해결한 다문화가정의 성원 역시 큰 힘이다. 이들이 보내는 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람을 가져다 준다.

그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다문화가정이 내게 보내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 견딜 수 있다. 언젠가 내 돈으로 다문화가정을 위한 지원시설을 세우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 정책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다고 김 씨는 느낀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는 내년까지 전국 모든 시군구에 다문화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센터를 지역 다문화정책 및 사업의 거점 기관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다문화센터가 앞으로 관련 정책 및 사업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이나 인력 등 여러 부문의 지원을 더 많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시 역시 조만간 다문화 전담 조직을 설치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다문화가족과를 신설했다.

양기호 한국다문화학회 회장(성공회대 교수)은 “이민청 같은 단일 기구 신설이나 정부의 다문화 관련 기능 통합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다문화센터를 통한 현장 맞춤형 행정이 필요하므로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서로 보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민관 손발 척척 ‘관악무지개네트워크’ ▼
함께 정책 기획… 아이디어 넘쳐… 구청 지원으로 한국어고급반 운영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관악무지개네트워크’는 다문화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잘 협조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시민단체는 다문화 가정, 예를 들어 이주여성이 필요로 하는 점을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뒤 지원을 요청한다. 정부는 정책과 제도를, 지자체는 시설과 비용을 후원하는 식이다.

이 조직은 2009년 11월 정식으로 발족했다. 관악구, YWCA 봉천복지관, 남부교육센터,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4개 기관은 2007년부터 1년에 1, 2회씩 만나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개별 단체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사업을 컨소시엄으로 진행하자는 제안이 회의에서 나온 뒤 2년간 논의 끝에 만들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지난해 1월에는 대한불교 천태종 명락빌리지, 행복문화인 관악지부, 선의관악종합복지관이 새로 참여했다.

네트워크를 이끄는 단체는 요즘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실 고급반을 운영한다. 이전의 교육은 초중급반 위주였다. 수강생이 적고 강의실이 부족해 고급반을 개설하지 못했는데 어려움을 전해 들은 관악구가 공간과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공동 주최한 축제에서는 다문화가정 구성원이 직접 무대에 올라 연극을 하거나 동시통역에 참여하는 등 행사 주체로 나섰다. 다른 지역의 다문화가정도 구경하러 올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동안은 시민단체나 구가 각각 축제를 구상해 다문화가정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웠지만 새로운 네트워크 덕분에 훨씬 짜임새 있는 행사가 가능해졌다.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의견을 나누고 정책을 기획하므로 아이디어의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여성 교육 종교 등 성격을 달리하는 단체가 참여해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논의하고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여성단체는 이주여성이 생활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교육단체는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 교육에 더 신경을 쓰니 상호보완이 가능해졌다.

관악무지개네트워크 김나나 과장은 “네트워크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기관이 개별적으로 다문화 사업을 진행할 때보다 훨씬 다양한 사업을 큰 규모로 기획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짧은 기간에 성과가 나오기를 바라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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