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교육혁명중]<4>스웨덴 최고명문 쿵스홀롬高

  • 입력 2008년 2월 1일 02시 42분


“선생님부터 달라져야” 일상화된 교사 재교육

1996년부터 학교선택제 도입 교육경쟁 강화

106년 공립고가 10년 된 사립고에 1위 뺏겨

학생-학부모가 평가… 교사 경쟁력 강화 자극

100% 영어수업 과정도입 국제화 도약도 꿈꿔

《세계 최고 수준의 평등 교육을 자랑하는 스웨덴은 1996년 학생들이 가고 싶은 고교를 고를 수 있는 학교선택권(school choice) 제도 도입을 통해 교육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때부터 개인이나 기업이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사립학교에 해당하는 자율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스웨덴 역사상 처음 등장한 학교선택권 제도와 자율학교가 등장하면서 학교 간 경쟁이 시작됐다.》

▽신생고가 100년 명문고를 깨우다=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을 구성하는 13개의 섬 가운데 ‘왕의 섬’이라는 뜻의 쿵스홀름에는 건물 외관에서부터 권위가 느껴지는 8층짜리 쿵스홀름 고교가 있다.

1902년 세워진 이 학교는 106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웨덴 최고의 공립 명문이다. 현재 10∼12학년(우리나라 고 1∼3) 1050명의 학생이 65명의 교사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 명문고의 교사들은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교사부터 변하자는 결의로 똘똘 뭉쳐 있다. ‘빅토르뤼드베리스콜란’이라는 학교가 등장하면서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빅토르뤼드베리스콜란은 불과 개교 10년 만에 스톡홀름 지역 고교 평가 1위에 올라 신흥 명문학교로 자리 잡았다. 입학 경쟁률이 5 대 1일 정도로 인기가 높고 교사의 40%를 외국인으로 채용해 모든 수업을 스웨덴어와 영어로 진행한다.

스웨덴 전체 고교의 대학 진학률 평균이 40%인 반면 이 학교는 99%의 경이적인 진학률을 자랑하고 있다.

쿵스홀름고의 역사 교사인 존 톨러 씨는 “요즘은 ‘빅토르’란 말만 나와도 귀가 쫑긋해진다”며 “이 학교를 따라잡기 위해 교사들이 분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의 출발점은 교사”=쿵스홀름고의 앙네타 칼슨(여) 교장은 “학교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교사의 질을 높여 학교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변화의 출발점은 교사라는 것.

이를 위해 칼슨 교장은 교사들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격주에 한 번씩 학생회 임원을 만나 교사의 수업에 대한 평가를 듣는 시간을 정례화했다. 월 1회 학부모 모임을 통해서도 교사 평가를 청취하고 있다. 이때 교사 평가를 문서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매 학기(3학기로 구성) 학생들이 작성하는 수업 평가도 교장이 일일이 검토한다.

이 같은 3단계 평가에서 2, 3차례 문제가 지적되면 교사에 대한 경고 조치를 내리고 재교육을 권유하게 된다.

칼슨 교장은 “재교육은 문제가 있는 교사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교사도 해당된다”며 “앞으로 재교육받는 교사 비율을 더 늘려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학교에서는 또 우수교사를 초빙하기 위해 교사 급여를 파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통 5년 경력 교사의 월급이 360만 원 정도인데 칼슨 교장은 “박사 학위 소지자라면 두 배 수준으로 급여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 학교에 박사 학위를 소지한 교사는 4명뿐이다.

▽교육당국도 교사 경쟁 지원=스웨덴 교육당국 역시 교사 개혁을 위해서는 교사의 질을 우선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스웨덴 국립교육청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2조20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교사 증원에 투입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의도다. 2006년에는 교사 재교육을 위해 133억 원을 배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교사 재교육이 징벌 차원보다는 역량을 높이는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당국도 재교육 교사들에 대해 충분히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재교육 교사들은 대학에서 필요한 코스를 밟을 수 있고 교육기간에는 월급의 80%를 받는다. 재교육은 1학기 동안 종일 교육을 받거나 1년 동안 반일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반일 교육을 받을 때는 학교에서 수업을 일부 해야 한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1년에 8000명의 교사가 이처럼 대학에서 재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국제화로 재도약의 발판=쿵스홀름고가 교육 과정과 관련해 야심작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다.

IB는 주로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수업도 국제화 마인드를 갖추는 데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간호학 등 이 학교의 다른 과정이 스웨덴어 55%, 영어 45% 정도의 비율로 진행되는 반면 IB는 100% 영어 수업이다. 또 학생들은 해마다 2, 3차례 아프리카나 동아시아 등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10학년과 11학년 19명이 함께 듣는 IB 세계사 수업을 찾았을 때 교사와 학생 모두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교사는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안드레아스 조르 씨였다.

학생들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구분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10학년 폴리나 크란츠 양은 영국에서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5분여간 능숙한 영어로 설명했다.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그는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쿵스홀름의 IB 과정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입학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IB 과정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스톡홀름 지역 인근 공립학교인 스웨드라라틴, 노라레알 고교 교사들과 정기적인 교수법 세미나를 하기도 한다.

IB 과정을 이수하면 협약을 맺은 독일과 중국 등 세계 여러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 학교는 지난 입시에서 1050명 모집에 4000여 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3.8 대 1을 보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9학년(중 3)까지 내신 성적은 320점 만점에 280∼310점을 받아야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칼슨 교장은 “학교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라며 “외국어 공부를 철저히 시키고 해외 경험을 다양하게 하도록 하는 등 국제화를 통해 쿵스홀름의 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김기용 기자 kky@donga.com

황선준 국립교육청 국장 “자율학교 등장으로 교사들 긴장…더 좋은 교수법 개발 위해 노력”

“학교선택권제도와 자율학교 도입으로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문제점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스웨덴의 유초중고교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스웨덴 국립교육청 ‘스콜베르케트’에서 재정국장을 맡고 있는 황선준(54·사진) 씨는 “스웨덴 교육의 장점과 단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한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5년 전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나 스톡홀름대에서 교수와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99년부터 국립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스웨덴 정부기관의 고위 공직자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자율학교 도입으로 나타난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교사들의 변화와 교육 민주주의의 확대를 꼽았다.

그는 “경쟁을 통해 자율학교뿐 아니라 공립학교 교사들도 자신의 교수법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면서 “교사의 질이 떨어질 경우 부모들이 학생들을 전학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의 각 학교는 학생수에 따라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학생 1인당 연간 8만 크로나(약 1190만 원)이다. 따라서 학생이 떠나면 학교는 그만큼 재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재 스웨덴 교육의 고민은 지난 10년 동안 학교선택권과 자율학교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도 문제점으로 나타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황 국장은 “학교선택권이 도입된 이후 좋은 학교는 계속 좋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에는 결국 이민자나 소득 수준이 떨어지는 소외 계층만 남게 돼 사회 갈등이 조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국장은 “스웨덴은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외된 학생 1인당 재정 지원을 1.5배 가까이 늘리고 우수한 교사들을 뒤떨어지는 학교에 배치하는 등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지식 교육에 관한 한 세계적 수준이지만 이제는 인적 자원 개발에서 창의력, 비판력, 독립성 등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스톡홀름=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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