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박맹호 민음사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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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책밖에 몰랐던 ‘영원한 출판인’

15년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중 출판인으로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며 활짝 웃음 지은 박맹호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왼쪽이 둘째인
박근섭 민음사 대표, 박 회장의 오른쪽부터 맏딸 박상희 비룡소 대표와 막내 박상준 사이언스북스 대표이사. 동아일보DB
15년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중 출판인으로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며 활짝 웃음 지은 박맹호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왼쪽이 둘째인 박근섭 민음사 대표, 박 회장의 오른쪽부터 맏딸 박상희 비룡소 대표와 막내 박상준 사이언스북스 대표이사. 동아일보DB
 “열흘 전 병원을 찾아 문안 드렸다. 거동이 힘들어 보였지만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빛 대화’는 그대로였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니 길을 밝혀주던 큰 등불을 잃은 기분이다.”

 22일 별세한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부음을 접한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의 말이다. 2005년 간 이식 수술을 받은 고인은 지난해 8월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유언은 없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모인 문인들과 출판 관계자들은 “평소 말수가 워낙 적은 분이었지만 늘 형형한 눈빛으로 생각하는 바를 또렷이 전했다. 일평생 흔들림 없이 일관한 행동과 태도가 그의 유지였다”고 애도했다.

 1993년 민음사에 입사해 2006∼2014년 민음사 대표를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단 한 번도 ‘어떤 책을 내라’고 일방적으로 지시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회장님은 실무자들의 제안을 신뢰하고 지지한 뒤 결과물을 받아보고 나서야 짤막하게 조언했다.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그저 ‘이거 꼭 내야 했어?’ 한마디 가볍게 건넬 뿐이었다. 함께 일하며 늘 행복했던, 든든한 선장이었다.”

 지시하기에 앞서 경청하고 격려하는 리더였지만 박 회장은 출판계에 투신한 뒤 50여 년 동안 줄곧 멈춤 없는 혁신을 선도했다. ‘잘 팔릴 책’보다 ‘세상에 필요한 책’을 내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는 것이 지인들의 공통된 기억이다. 빈소를 찾은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는 “천체물리학 책을 낸다고 하면 출판하는 사람 중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1980년대에 민음사에서 흔쾌히 책을 내자고 해줬다”고 회고했다. 그는 “속사정도 모르고 인쇄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한 게 두고두고 미안했다. 그래도 나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잘돼 마음의 빚을 좀 덜었다”고 했다.

 고인은 양질의 인문학술서적 출간에 정성을 쏟아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등 우수 해외 서적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는 “학술 분야에 공헌한 바가 국내 어떤 학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회사 경영자로서뿐 아니라 출판계 전반의 이슈를 이끄는 좌장으로서도 뛰어난 혜안을 발휘했다. 2005년 45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으로 당선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고흥식 한국출판인회의 국장은 “간 이식 수술 후라 몸을 움직이기 힘든 시기였는데도 해외 출장 업무를 마다하지 않고 쾌활한 얼굴로 해외 인사들과 대화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늘 말없이 솔선수범한 고인이 머물던 서울 청진동의 자그마한 옥탑방 민음사 사무실은 저녁마다 작가들과 동년배 출판인들로 복닥거렸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종로서적 구경하고 나서 민음사 들러 한잔 얻어먹는 습관을 가진 이 바닥 사람들이 적잖았다. 젊은이들이 좋은 책을 희구했던 시절에 누구보다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었다”고 돌이켰다.

 1994년 만든 민음사 계열 어린이 책 브랜드명 ‘비룡소’는 고인이 태어나 열세 살 때까지 살았던 충북 보은군 고향마을 이름이다. 젊은 시절 소설가를 꿈꿔 서울대 불문학과 재학 중 시사일간지 ‘현대공론’ 문예공모에 당선했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도 응모했다. 고인은 “소설은 천재가 쓰는 것인데 나는 천재가 아니라는 걸 다행히 일찍 깨달아 잘 포기했다”고 말하곤 했다. “천재 작가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겠다”던 그의 삶에 감사를 전하러 온 이들로 빈소는 밤이 깊도록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박맹호#민음사 회장#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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