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송성헌/盧대통령의 '골프와 삼겹살'

  • 입력 2003년 4월 25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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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헌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에서 골프를 끝내고 여야 지도자들과 삼겹살을 곁들여 소주 파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서민 대통령을 자처하는 노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에 걸맞은 수수한 장면이었다. 대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의 그런 소탈한 모습에 공감하는 눈치다.

그런데 왜 그 좋은 그림을 보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통사람’을 강조하며 서류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던 모습,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 메뉴를 칼국수로 바꾼 일들이 떠오르는 것일까. 노 대통령의 서민적 행보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청남대의 삼겹살 파티가 혹시 연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삼겹살은 서민들이 즐겨 먹는 값싼 메뉴이지 골프장 메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회동에서 골프를 제외하자는 참모들의 의견도 있었다고 하는데 차라리 그랬더라면 훨씬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골프를 제외하든지, 골프에 걸맞은 메뉴를 차렸어야 ‘연출’이란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주말이나 휴가기간에는 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휴식을 취한다. 열심히 일한 다음 적극적으로 자기 시간을 즐기는 것은 미덕이다.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면 오히려 당당하지 못하다.

한비자(韓非子)도 ‘탐관오리는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야 하지만 지나친 청빈도 처벌의 대상’이라고 역설했다. 벼슬이 정승이면서 좋은 집에서 기거하지 않고 좋은 마차를 타지 않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큰 벼슬에 오르면 직위에 걸맞은 윤택한 생활을 할 조건도 따라온다. 그럼에도 청빈을 한답시고 오두막집에 살며 마차도 타지 않고 궁상을 떨면 누가 열심히 공부해 벼슬하려고 노력하겠는가 하는 지적이다. 이는 젊은 인재들의 기개를 꺾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약화시키는 범죄행위라는 한비자의 독특한 철학이다.

대통령의 메뉴가 삼겹살이든 칼국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겉으로만 절약과 서민 풍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초심을 잃지 않고 매사에 진솔하게 솔선수범할 때 비로소 국민은 정치지도자를 인정하게 될 테니까.

송성헌 수필가·도서출판 청조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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