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除夜의 종

  • 입력 1998년 12월 30일 19시 36분


98년 마지막 밤, 하늘에 퍼져나갈 ‘댕 댕 …’ 33번의 보신각 종울림. 끝간데모를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사태로 침울하기만 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한해를 이 종소리에 실려 보낸다. 그리고 어제의 질곡과 번뇌는 씻어내고 대신 가슴마다에 새로운 기운과 희망을 채워주리라 기대한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보신각 종은 세조 14년(1468년)에 원각사종으로 처음 주조됐다. 높이 3.647m 구경 2.228m 무게 19.66t인 이 청동제 종은 임진왜란으로 종각이 소실된 후 1619년부터 지금 이자리에 자리잡았다.

보신각 종소리는 사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사소문(혜화문 소덕문 광희문 창의문)을 열고 닫는 신호였다. ‘파루(새벽종)’는 오전 4시에 33번, ‘인정(저녁종)’은 오후 7시에 28번을 쳐 통행을 풀고 금지했다. 파루의 횟수는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악에서 구하기 위해 이 횟수만큼 육신을 쪼개는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보신각 종이 침묵했던 때도 있었다. 일제하 36년과 6·25전쟁기간. 타종행사는 휴전된 53년 시작된 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보신각종은 옛 종이 아니다. 85년 시민성금으로 만들어졌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 탓일까. 80년 종 안쪽이 균열되고 84년엔 쇳소리가 나 바꿀 수밖에 없었다. 89년부터는 타종행사에 시민대표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짜로 종을 치는 사람은 보신각 ‘종지기’ 조진호(趙珍鎬·71)씨다. 선친으로부터 “‘종님’을 잘 모셔라. 네가 5대 종지기다”라는 유언에 따라 보신각 뒤편 7평짜리 관리소에서 종을 보살펴온지 36년째다. 실제 타종식에서 타종인사들은 포즈만 취할 뿐 맨 뒤에서 방향을 잡고 힘을 싣는 일은 조씨의 몫이다.

조씨는 “제야 때마다 종을 치며 많은 것을 빌어왔지만 올해는 나라살림이 하루빨리 펴지기를 소망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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