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기수]엘리트주의 여전한 정부 로스쿨案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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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정부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을 뼈대로 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동안 법조계와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미국식 로스쿨의 도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학계를 중심으로 도입에 반대하는 여론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을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거로서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 양성을 내세운다. 시민단체는 로스쿨의 도입이 변호사의 수를 늘림으로써 턱없이 높은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에서 그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소수의 변호사가 독점해 온 법률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지적이나 시민단체의 불만에 대해서 이의를 갖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로스쿨을 도입함으로써 정말로 전문성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낮은 가격으로 제공할 수만 있다면 정부의 로스쿨 도입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추진의 로스쿨 안은 그 자체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로스쿨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른바 ‘법조인 엘리트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수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개설이 허용되는 로스쿨의 수를 극소수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로스쿨제도가 실시되더라도 매년 배출되는 변호사의 수에는 별 변동이 없을 것이다. 이는 결국 법조인 엘리트로 가는 관문을 사법시험에서 로스쿨 입학시험으로 바꾼 데 불과할 뿐 국민이 염원하는 법률서비스의 양과 질의 제고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정부의 로스쿨 추진 안은 양질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법과대는 4년 교육과정인 반면, 새로운 로스쿨의 교육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4년 동안에 가르치던 내용을 3년에 가르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 안에 따르면 그간 법학교육이 시도하지 못했던 특별법 분야의 교육까지 로스쿨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떻게 3년의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로스쿨제도는 일본에서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필자는 일본 와세다대 로스쿨의 초청으로 10개월간 연구하면서 일본 로스쿨의 실상을 현장에서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교수나 학생들의 일치된 진단은 미국의 로스쿨제도를 모방하여 법학 교육 방식의 전환을 시도한 일본의 로스쿨 제도는 실패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학교육의 파행을 몰고 온 진정한 주범은 합격자를 극도로 제한하여 법조인 입문을 인위적으로 어렵게 하고 있는 사법시험제도이다.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에서 법학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자는 대부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실무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비로소 진정한 법률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정부가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서 법조인 전문성과 법률서비스의 제고를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 실정에도 맞지 않고 법률서비스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로스쿨제도 도입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사법시험을 지금의 임용시험에서 자격시험으로 전환함으로써 ‘전관예우’나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 우리나라 법조문화 왜곡의 근원이 되고 있는 법조인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용기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정부가 단호히 대처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기수 고려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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