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이글이글]건국대 성태용 교수가 보는 '도올 논쟁'

  • 입력 2001년 2월 25일 18시 51분


《김용옥씨의 강의를 두고 이야기가 무성하다. 그러나 이런 논쟁들이 생산적이지 못하고, 결국은 서로를 깎아먹는 결과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뭐라 해도 김용옥씨로 인해 중국 고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된 것은 사실이고, 이렇게 증가된 관심은 동양학 전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비난하기만 하는 논쟁은 김용옥씨가 자부하는 ‘전위적’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고, 모처럼 일어난 바람을 일과성 폭풍으로 잠재우기엔 학계로서도 너무나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 바람의 중심이 되고 있는 김용옥씨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는데 누가 시비를 하느냐’, ‘9단이 9급과 같이 놀 수 있느냐’ 하는 식의 권위 의식을 버려 달라는 것이다.

“군자는 말만 듣고 사람을 등용하지도 않으며, 말한 사람이 어떻다 하여 그 사람의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고 하는 논어의 가르침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권위는 권위 자체를 강조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자로 자부한다면 자신이 내놓은 이야기에 대해 남들이 비판할 때 성실히 응답하여 자신도 발전하고 남도 발전하는 그러한 모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학문이라는 것은 어떤 결론적인 주장보다는 그 주장을 내 놓는 과정과 논리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그래서 번듯한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을 두고 학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선동가나 모럴리스트의 역할이다. 김용옥씨가 그런 역할에 자신을 한정시킨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에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고자 한다면 학문에서 요구하는 기본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김용옥씨의 강의는 너무나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너무나 거창한 주장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아닌가 싶다”, “…한 인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는 식의 발언이 너무 자주 나온다. 더구나 그것이 중요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는 권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 강의의 성격 때문에 자세한 논의를 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빠져나가려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대중 강의이기에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재미를 위해 양념을 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기존의 권위를 깨뜨리는 새로운 문제제기가 충만한 강의, 그러면서도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강의, 이것이 김용옥씨의 강의가 지닌 매력이다. 거기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권위를 깨뜨리는 방식이 중요하다.

오랫 동안 존중받아 온 권위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이를 깨뜨리는데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권위를 전면에 내세우고, 근거없는 폄하나 상스런 말로 그 권위를 깨는 것은 새로운 권위의 확대재생산일 뿐이다.

김용옥씨가 크게 외친 내용들은 일과성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몸짓과 말짓으로 보여준 모습은 벌써 대중들을 길들이고 있으며, 오랫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

파격적으로 김용옥씨의 강의를 편성한 방송사들은 이런 영향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려는를 했는지 모르겠다. 동양학이나 중국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결단에서 나온 고육책인지, 아니면 인기몰이에 급급하여 사회적 공기의 기본적인 안전판까지 떼어 버린 것인지를 물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저급한 언어의 구사라든가, 너무도 치우치고 편향된 강의를 편성한 문제 등은 이미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어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하여 대중적인 관심을 폭발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성공을 거두지 않았느냐고 변명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일으켜진 바람은 오히려 올바른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김용옥씨나 방송사나 대중 강의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이야기조차 혹 인기에 편승하기 위한 흠집내기로 여겨질까 주저하게 되는 현실의 분위기가 곤혹스럽다.

성태용(건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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