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수능모의고사 치르기 학원가 때아닌 북새통

  • 입력 2001년 3월 25일 20시 10분


“고교 3년생 부모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시험조차 맘대로 치를 수 없게 합니까?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를 치려고 학원 10군데를 알아봤지만 모두 마감됐더군요.”

토요일인 24일 천신만고 끝에 수험생 딸을 데리고 서울 강동구 명일동 B학원을 찾은 주부 남경순씨(43)의 말이다.

최근 교육부가 고교에서 수능 모의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하자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모의고사 치기 작전’을 벌이고 있다.

▽모의고사 백태〓서울 B고는 모학원을 지정해 토요일인 24일 오후 학생들에게 모의고사를 치르게 했다. 학원측은 B고로 직접 성적표를 우송해주게 돼있다. B고는 모의고사를 단지 학교에서만 치르지 않았을 뿐 모의고사를 본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B고 학생들은 이전 같으면 학교에서 편하게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었지만 올해는 학원을 오가는 경비와 시간을 손해봤다.

각 입시기관에서 실시하는 모의고사료는 6000원선. 학교에서 치르면 원가에 시험을 치를 수 있지만 학원에서 치르게 되면 8000∼1만원의 수험료를 내야 한다. 장소 제공 및 시험 감독에 드는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모의고사를 치를 수 없어 진학지도에 곤란을 느낀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학원에 가서 모의고사를 치를 것을 종용하며 성적표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C고 3년생 윤모군(17)은 “대학에 갈 생각도 없는데 반강제적으로 모의고사를 치러야 하고 성적표를 의무적으로 선생님께 제출해야 한다”며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치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각 고교 주변 학원에서는 모의고사를 치르는 고교생을 흔히 볼 수 있다.

▽문제지 구하기 작전〓교육부의 ‘권고’에 따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고사를 중단한 중앙교육진흥연구소에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학교운영위원이라는 한 학부모는 “학운위가 결정했으니 학교에서 뭐라고 했건 시험지를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개별적으로 사설 입시학원을 찾아 문제지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학원에서 각자 다른 시간에 모의고사를 치르는 것을 이용해 ‘부정’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대학에서 모의고사 성적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한 극성스러운 학부모는 시험지를 구하러 학원에 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교육부가 올해부터 모의고사를 전면 금지한 것은 학생들에게서 시험 부담을 덜어주고 사교육비를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현행 수능시험은 전국적인 상대평가여서 수험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고 실전과 흡사한 연습을 하려면 모의고사를 치르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부터 각 시도 교육청에서 학력고사 형태의 모의 수능시험을 실시하지만 이 시험은 성적만 나올 뿐 순위가 드러나지 않아 수험생들이 욕구를 채우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교육부의 ‘금지령’은 실효성이 없어 오히려 수험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같은 반 학생들이 모두 모의고사를 치렀다는 S고 3년생 이모양은(17)은 “학교에서 치를 것을 학원에서 치러야 하는 번거로움만 가중될 뿐”이라고 말했다.

대성학원 이영덕(李永德·43) 평가실장은 “대입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현 시점에서 모의고사를 제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처사”라며 “학원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고3학생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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