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번지는 '방화'…수사는 제자리

  • 입력 2001년 3월 19일 18시 54분


방화(放火)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화재원인 분석률이 90% 이상인데 비해 국내 분석률은 70%대에 그치고 있어 상당수의 방화사건이 '원인불명' 으로 종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원인불명인 화재사건의 증가는 수사기관의 △전문성 부족 △경찰과 소방관계자의 허술한 공조체계 등으로 화재원인 조사가 소홀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방화의 증가는 사회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작년 서울방화 23% 껑충▼

▽뛰는 화재발생= 행정자치부 소방행정과에 따르면 전국의 화재 발생건수는 96년 2만8665건에서 98년 3만2664건 지난해엔 3만4844건으로 5년간 20%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일어난 화재 중 누전·합선(1만1795건) 담배불(4305건) 등 원인이 밝혀진 것은 전체의 74.5%인 2만5953건에 불과하다.

방화의 경우 97년 2655건에서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이 닥친 98년에 3056건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경제 회복기였던 99년에는 2434건으로 줄었다가 경제가 다시 나빠진 지난해 2559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서울에는 96∼98년에 매년 800여건씩 일어나던 방화가 99년 581건으로 줄어든 뒤 경제가 악화된 지난해 717건이 발생, 1년만에 23% 이상 증가했다.

경찰대학 한종구(韓鍾旭·38·범죄심리전공)교수는 방화는 사회적 스트레스 증가와 관련성이 높다 며 방화범죄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므로 지금이 바로 화재 전문요원을 집중 양성해야 되는 시기 라고 말했다.

▼소방서-경찰 따로 조사▼

▽기는 화재원인 조사= 화재가 발생하면 반드시 경찰과 소방관계자들로 합동수사반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함께 만든 보고서가 일반에 공개되는 미국과 달리 국내 경찰과 소방당국은 각자의 보고서를 만들뿐 공통된 조사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의 경우 방화건수에 대해 소방당국과 경찰은 각각 2559건과 1263건으로 다르게 파악했다.

일선 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소방법보다 형법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현장에 먼저 도착한 소방관보다 경찰관이 조사를 주도한다" 며 "의견수렴 등에 필요한 토론 등은 꿈도 못 꾼다" 고 털어놨다.

화재조사를 주도하는 경찰도 △전문수사요원 부족 △법정소송에 휘말릴 우려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 과학수사반 오세창(吳世昌·52) 경위는 "현장증거 부족으로 수사도 쉽지 않고 보험관련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마저 있어 과학수사반에 배치되는 것을 꺼리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한 달에 4∼5시간 지방청에서 받는 교육으론 정확한 화인조사를 위한 전문지식을 얻기 어렵다" 며 "수사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대부분 누전으로 처리한다" 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협조요청이 있어야 출동하는 서울경찰청 화재수사협의회(경찰 소방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가스안전공사 등 전문가 7∼8명으로 구성)도 일선의 소극적인 자세로 지난해 7월 창설된 이래 단 3차례만 가동됐다.

▼참사유발 간접원인 제공▼

중앙소방안전기술위원회 김운형(金運亨·40)위원은 "경찰 소방 모두 화인분석이 가져올 책임소재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전문지식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 보완이 시급하다" 며 "허술한 화재조사가 반복적인 화재참사를 유발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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