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농어촌 추위 피해 속출…피땀이 얼어터진다

  • 입력 2001년 1월 16일 18시 35분


폭설에 쑥대밭이 된 인삼밭
폭설에 쑥대밭이 된 인삼밭
폭설이 내린 뒤 혹한이 계속되면서 농축어가(農畜漁家)에도 유례 없는 ‘한해(寒害)’가 잇따르고 있다. 각종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는 비닐하우스와 해산물양식장 등을 운영하는 농어가가 특히 많은 피해를 보았다.

이로 인해 농어민들이 직접 경제적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공급부족 유통난 및 소비위축 등으로 농수산물의 가격이 불규칙하게 형성돼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농축가 피해〓충북 진천의 장미재배단지에서는 최근 30㎝ 가량의 폭설로 시설하우스 7만2000㎡가 파손돼 13억9000만원의 피해를 본 데 이어 16일 영하 19.5도의 혹한이 닥치자 농민들은 꽃이 얼어죽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특히 다음달 졸업 시즌을 앞두고 출하할 예정이던 꽃들이어서 더욱 타격이 컸다. 다 키운 2년생 장미 2만 포기를 잃었다는 곽홍철씨(29)는 “졸업 시즌에 맞춰 조기 출하하기 위해 그동안 정성껏 재배해온 장미들이 강추위에 그대로 스러져 가시덤불만 남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 건지리 박창오씨(41)는 13일 새벽에 내린 20㎝가 넘는 폭설로 첨단 비닐하우스 200평짜리 7동이 폭삭 내려앉는 바람에 일본에 수출하려던 3000여만원어치의 방울토마토 농사를 망쳤다. 울산 북구 상안동에서 36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황순구씨(45)는 “딸기꽃이 추위에 얼어 딸기가 열리지 않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세출리에서 양계를 하는 신병천씨(49)는 계사 12동이 무너져 닭 6만마리 중 4만마리를 잃었다.

▽양식장 피해〓연 4일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이 계속되면서 서남해안 양식장에서 250여만마리의 숭어와 농어가 얼어죽었다. 이로 인해 서남해안 양식장 10여곳에서 48억여원어치의 손실을 입었다.

최근 서남해안 해수 표층 온도는 전남도 수산시험연구소가 측정한 결과 4.5∼5.2도로 손을 담그기조차 힘들 정도로 차가운 상태.

피해 어민 박균용씨(49·전남 영광군 백수읍 약수리)는 “90년부터 양식장을 운영해왔지만 물고기가 동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가격 이상〓딸기와 방울토마토 오이 등을 재배하는 농가의 경우 기름값 부담이 커져 아예 영농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고, 경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교통난 등으로 배추를 출하하지 못해 아예 경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배추 등 채소가격은 다소 올랐으나 과일은 소비위축으로 오히려 가격이 내리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설을 앞둔 ‘대목경기’가 뒤죽박죽된 셈이다.

16일 경남도와 창원농산물도매시장 등에 따르면 상추와 시금치 느타리버섯 등은 1.5배 안팎으로 가격이 올랐지만 과일의 경우 15㎏ 기준으로 사과는 연초 1만7500원에서 최근 1만7000원으로, 배는 2만원에서 1만8000원으로 각각 내렸다.

<지방취재팀>jrjung@donga.com

▼서울 '달동네'의 추위나기…전기장판 하나로 버텨▼

쓰러져가는 4, 5평 크기의 판잣집과 벽돌집 1200가구가 모여 사는 서울 구로구 구로3동.바깥의 냉기를 막는 유일한 벽은 얇은 판자 한 장뿐이었다. 취재진이 찾아간 15일 이곳은 이미 며칠 동안의 강추위에 ‘얼음나라’가 된 뒤였다. 골목은 스케이트장처럼 반질반질한 얼음판이었고 집집마다 처마에는 어린이 팔뚝 굵기만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판자로 겨우 얽어놓은 대문이 찬 공기를 제대로 막아줄 리가 없다. 이 마을 가구 절반 이상의 수도관이 얼어터졌고 보일러도 대부분 고장났다.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곳은 10∼20가구 단위로 설치된 공동화장실. 주민들이 밥 지을 물을 떠가기 위해 화장실 앞에 줄 서 있는 장면은 이 동네에선 낯설지 않다.

양모씨(82)는 미리 떠놓은 물을 밤새 방안에 놓아뒀더니 꽁꽁 얼어버렸다며 ‘얼음 대야’를 보여줬다. 그는 “전기장판 하나로 몸을 감싸고 견디고 있다”고 쓸쓸히 말했다.

‘난곡동’으로 더 잘 알려진 서울 관악구 신림7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산기슭에 자리잡은 탓에 눈이 잘 녹지 않아 아직도 무릎 깊이로 눈이 쌓여 있었다.

집집마다 설치한 두 겹의 비닐창도 매서운 추위를 쉽게 견디지 못하고 있다. 98년 실직하고 99년 사업에 실패한 뒤 빚더미에 올라 지난해 초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남모씨(40)는 “난생 처음 추위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풍이 너무 심해 자고 나면 코가 빨갛게 얼어버린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9)은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고 있었다.

남씨는 “우리에게 이런 강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재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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