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생명 못지키는「도로 안전시설」

  • 입력 1999년 7월 4일 22시 23분


지난해 9월28일 오전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일대 경부고속도로.

경남 고성군 주민 17명을 태우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장으로 향하던 승합차가 갑자기 뒤뚱거리더니 도로변의 가드레일을 부수고 5m 아래 수로(水路)로 추락했다.

승합차에 타고 있던 17명 가운데 10명이 숨지고 나머지 7명은 중상을 입는 대형사고였다.

운전자의 졸음운전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도로변의 가드레일이 제 역할을 다해 승합차의 추락을 막았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고였다.

98년 발생한 23만9721건의 교통사고 가운데 차량이 가드레일이나 중앙분리대 등을 들이받아 난 차량단독사고는 1만318건.

이는 전체 교통사고의 약 4%에 불과하지만 사망자수에서는 전체의 19%를 차지할 정도로 사망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은 사고다.

따라서 중앙분리대와 가드레일 등 도로시설의 안전도를 높이고 설치를 확대하면 교통사고 사망률을 상당히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 교통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현재 중앙분리대와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의 설치는 크게 미흡한 수준.

건설교통부의 도로시설규정에 따르면 중앙분리대는 고속도로 및 왕복 4차로 이상의 국도와 지방도에 설치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현재 설치된 곳은 10%도 안된다. 자동차전용도로나 교량 등 꼭 필요한 곳에도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건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도로신설과 확장에 주력하다보니 안전시설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2001년까지 1400억원을 투입해 사고가 잦은 곳이나 도로의 굴곡이 심한 곳에 중앙분리대를 설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도로변의 가드레일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가드레일 설치기준이 60년대 일본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 그동안의 자동차 성능향상이나 도로상황 변화에 부합치 못하고 있다는 것.

현재 가드레일은 승용차와 14t 트럭이 각각 15도 각도로 시속 60㎞로 부딪혔을 때 도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원래 주행차선으로 되돌아 오는 것을 기준으로 설치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준속도가 비현실적인 점이 문제.

한국도로공사 도로연구소 이기영(李棋榮)연구원은 “과속이나 운전자 부주의로 가드레일과 충돌하는 사고시 차량의 속도는 보통 80㎞ 이상”이라며 “기준속도를 더 올려 가드레일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교량의 경우 올림픽대교와 잠실대교를 제외한 모든 교량의 난간이 차량의 추락방지용이 아니라 보행자 안전시설의 하나로 설치돼 있는 것도 문제. 차량이 이 난간에 부딪칠 경우 속수무책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노관섭(魯官燮)박사는 “도로가 넓어지고 자동차의 성능이 좋아져 과속의 위험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지만 도로안전시설 설치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고 지적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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