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배재현/선관위 ‘모호한 태도’ 곤란

  • 입력 2004년 3월 2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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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6일자 이 난(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중플레이’ 비난여론을 반박한 데 대해 할 말이 있다.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과 민주당에 보낸 공문 내용이 서로 달랐던 것을 두고 선관위는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에는 처벌규정이 없고 국가원수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해명했으나 납득하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전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관위 공문은 경고가 아닌 의견표명이라고 강조하면서 공개한 공문 내용은 이렇다. “우리 위원회는 대통령 발언이 사전선거운동 금지 규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대통령은 선거중립 의무를 갖는 공무원이므로 앞으로 의무를 지켜 달라.”

그 반면, 선관위는 민주당에는 대통령이 ‘공무원의 중립의무’ 조항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선관위는 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금지’와 ‘공무원 중립의무’ 조항을 구분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은 ‘어쨌든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선관위는 공식 발표와 전혀 다른 문구의 공문을 대통령에게 보냄으로써 과공(過恭)한 것은 물론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그르쳤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것이 이중플레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선관위가 헌법재판소의 의견제시 요구에 불응한 것도 문제다. 선관위는 헌재의 요청이 ‘탄핵심판청구의 당부(當否)에 대한 의견제시’를 말하는 것이기에 내지 않았다고 하나, 헌재 측은 의견의 범위를 한정해 요구한 적이 없다. 당연히 선관위는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관련 자료를 정식으로 보내 탄핵심리에 참고토록 해야 한다.

헌법기관 간의 행위는 말이 아니라 공문서에 의해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선관위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선관위는 말과 공문서가 다른 모호한 태도를 벗어야 한다.

배재현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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