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그후 1년]<1> “갑자기 혁명을 맞았다”는 이집트 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무바라크 물러났지만 먹고살기 더 팍팍”… 카이로 ‘카오스’

《 지난해 초 튀니지 이집트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을 입증한 세계사적 사건이었으며, 해를 넘겨서도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화 열망의 도미노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후 1년, 민주혁명을 겪은 나라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국제부 허문명 차장이 이집트 리비아 등 민주혁명 성공에 이어 국가재건이라는 과제와 씨름하는 현장을 둘러보며 생생한 현지 표정을 전한다. 》
노숙인들 쉼터로 변한 ‘민주화 성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타흐리르 광장. 혁명 1년여가 지난 지금은 노숙인들의 쉼터로 변했다. 광장 앞 8층짜리 호텔 발코니에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5분 촬영비로 20달러를 냈다. 혁명의 성지는 관광상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카이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노숙인들 쉼터로 변한 ‘민주화 성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타흐리르 광장. 혁명 1년여가 지난 지금은 노숙인들의 쉼터로 변했다. 광장 앞 8층짜리 호텔 발코니에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5분 촬영비로 20달러를 냈다. 혁명의 성지는 관광상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카이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집트 카이로공대를 졸업하고 관광가이드를 15년째 하고 있는 칼레드 씨(45)는 경찰이 시위대에 무장 해제돼 카이로가 ‘해방구’가 된 지난해 1월 18일(일명 ‘분노의 날’) 밤 집 앞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목격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퇴진’을 외치던 이웃과 친구들이 폭도로 변해 상점과 면세점 전자제품 대리점 등에서 마구 물건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부자들을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칼레드 씨는 28일 기자와 만나 “태어나 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약탈은 잠잠해졌지만 그날 이후부터 카이로에는 규칙이나 질서를 우습게 여기는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로의 무질서를 대표하는 게 ‘교통’이다. 운전자들이 도심에서 차선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앞서가겠다고 엉켜 신호등이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교통경찰은 보이지 않는다. 27일 시내에서 겨우 만난 한 교통경찰관은 “시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경찰을 때리는 시민들도 있다”며 “그동안 무소불위였던 경찰의 업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오죽하면 경찰들 사이에서 ‘경찰 없는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직접 느껴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라고 하소연했다.

은행원 카짐 씨(40)는 “혁명 전 이집트 경찰은 부패와 폭력 수사로 시민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공공의 적이었다. 하지만 혁명 후엔 상황이 역전됐다. 경찰이 거의 통제권을 상실했다. 혁명 후 경찰들의 직장 복귀율이 기존 인력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말도 들린다. 시민들도 1년이나 치안공백상황이 이어져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니 뭔가 많이 잘못됐다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들과 상류층 주거지역으로 꼽혀 ‘카이로의 한남동’으로 불리는 마디에서 10년째 살고 있다는 한 교민은 “요즘엔 강도는 물론이고 어린이 유괴, 마약거래, 차량도난 사고 등이 잇따르고 밤에 총소리까지 들린다. 이민 와서 이런 적이 없었다”며 “최근엔 리비아 반군들로부터 무기가 밀수돼 불법 총기를 소지한 사람까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의 치안 부재 상황은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이 나라 경제의 주 수입원인 관광 수입을 떨어뜨리고 있다. 입국비자를 받고 짐을 찾아 입국 수속을 하는 데 채 15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카이로 국제공항은 한가했다. 최고 관광대국 이집트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집트의 관광수입은 매년 평균 120억∼160억 달러(약 13조5600억∼18조 원)였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난 지난해 관광수입은 전년(125억 달러) 대비 30%가량 떨어진 88억 달러. 관광가이드를 13년째 하고 있다는 아흐무드 씨는 “12월∼다음 해 3월이 최고 시즌인데 요즘은 수입이 많이 줄었다. 최고 고객이었던 유럽이 경제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데다 치안이 악화돼 관광객이 올 생각을 안 한다. 온 사람들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해 쓰는 돈이 줄었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악화됐던 이집트 경제는 혁명 이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2011년 경제성장률은 1.8%로 전년 5.1%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전년 대비 67%나 내려갔다. 지난해 3월 300억 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 현재 181억 달러로 줄었다. 세금이 안 걷히는 상황에서 민심을 수습한다며 공무원 임금 15% 인상, 에너지 식료품 보조금 지출 등으로 세금을 써대는 바람에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관광수입과 함께 이집트 재정의 또 다른 주요 수입원인 해외근로자 송금(연 70억∼80억 달러)도 급감했다. 아랍 22개국 중 인구(8300만 명)가 가장 많은 이집트는 그동안 리비아를 비롯해 각국에 노동자로 나가 있는 이들이 보내는 달러가 경제의 또 다른 버팀목이었지만 리비아 내전으로 무려 1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돌아왔다고 한다.

네 자녀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헤나 씨(43)는 “모든 물가가 혁명 전보다 두 배가 올랐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남편은 실업 상태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며 “요즘엔 돈을 노리는 어린이 유괴사건도 많이 일어나 직장에 나오면 애들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카이로대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당초 청년들이 시위에 나선 목적은 무바라크 독재에 대한 증오도 있었지만 인구 절반이 하루 생활비 2달러에 불과한 빈부격차 문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컸다”며 “무바라크만 물러나면 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고 전했다.

지난해 1월 25일 시작된 이집트 민주화 시위는 17일 만인 2월 11일 무바라크 대통령을 퇴임시키며 30년 독재를 끝냈다. 시위대 846명이 죽었고 6467명이 다쳤다. 5월 말에는 역사적인 첫 민선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이집트의 정치는 한마디로 혼란상태다. 지식인들을 만나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누가 해결해야 할지 주체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문제를 지적하면 뭐하느냐”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카이로대에서 만난 한 교수는 “무바라크가 감옥에 있지만 군인들이 지키는 호화 병원에 수감돼 있다. 이러다가는 자연사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시민들이 원했던 것은 즉각적인 과거 청산이었지만 진행되는 게 없다”며 “당초 군부의 빠른 권력이양을 기대했지만 1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5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이집트가 건설될 것이라고 하지만 군부가 계속 실권을 행사하는 한 이집트의 미래는 어둡다”고 했다.

무바라크 시대가 끝난 이집트가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규칙과 질서는 무너져 있었고 경제는 악화됐으며 시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지금 이집트’를 보며 파괴보다 건설이 더 힘들다는 것, 대안 없는 혁명은 혼돈을 부른다는 것을 절감했다. “갑자기 혁명을 맞았다”는 이집트인들은 과연 ‘뉴이집트 재건’에 성공할 수 있을까.
▼ “5월 대선서 軍출신이 당선되면 제2 무바라크 될 것” ▼
■ 이집트 ‘민주주의 전도사’ 알마샤트 퓨처大 학장


이집트 내에서 민주주의 전도사로 불리는 압둘 모넴 알마샤트 퓨처대 사회과학대학장(63·정치학 전공·사진)을 27일 학교에서 만나 이집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혁명 후 ‘민주주의 문화재단’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이집트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선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체 이집트 인구의 30%, 카이로 인구의 5%만 참여해온 반쪽 선거였다. 혁명 후 국회를 구성하는 일에서부터 나라 예산을 짜고 선거를 하는 일까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통한 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 이집트는 어떤 상태인가.

“거대한 혼돈 상태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 없이 무바라크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만이 존재한다. 기존 기득권층은 그대로 남아 오히려 무바라크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이집트는 ‘민이 지배할 것이냐, 군이 지배할 것이냐’, 또 ‘이슬람 국가로 갈 것이냐, 그러지 않을 것이냐’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헌법을 만드는 제헌의회 의원의 90%가 이슬람 성향이다. 이에 반발해 17명이 사표를 쓴 상태다.”

―뉴 이집트 건설을 위해 정치적으로 가장 큰 당면과제는….

“군부 청산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군 출신이 당선되면 또 하나의 무바라크가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 순수 민간인 출신 지도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한다. 이슬람 국가를 표방하는 사람도 안 된다. 정치는 종교논리로 풀 수 없다.”

―군부 청산이 바로 이뤄지긴 힘든 것 아닌가. 한국도 18년 박정희 시대를 끝내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등 군인 출신이 집권했다.

“한국의 역사와 민주화 경험을 잘 알고 있다. 정권을 잡아 나라를 운영했던 한국군과 무바라크 군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한국군은 대외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며 나라 발전의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무바라크 군대는 이집트를 위해 한 게 없다. 자기들 잇속만 차리면서 폐쇄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이집트 군부는 생수산업에서부터 골프장 사업까지 이집트 경제의 30%를 쥐고 흔들고 있다. 군이 최대 기업인 셈이다. 군부가 청산되지 않고서는 이집트 미래를 말할 수 없다.”

―이집트 혁명은 왜 일어났나.

“생활고, 독재에 분노가 쌓인 시민들이 폭발한 거다. 이집트에는 한국처럼 새마을운동도 없었고 교육열도 약하다. 문맹률도 높다.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이 닫혀 있고 특권층의 바리케이드가 견고해 아무리 노력해 봐야 잘살 수 없다는 절망만이 팽배했다. ‘그저 만족하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슬람의 가치관도 큰 몫을 했다. 그러다 인터넷이 터지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자각이 든 거다. 하지만 우리는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후에 대해서는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대안 없는 혁명, 리더가 없는 혁명을 하다 보니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혁명이 인텔리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 혁명이었다면 제2의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의 봉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혁명이 다시 일어나면 이집트는 정말 어려워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혁명 전 이집트인들에겐 ‘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들 희망, 미래를 말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변화다. 사회적 에너지가 생긴 거다. 국민을 함부로 대하면 무바라크 아니라 무바라크 할아버지가 와도 몰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옳은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미래는 희망적이다.”

카이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집트#아랍의봄#튀니지#민주화혁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