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이라크 앞날]<1>네그로폰테 美 대사

  • 입력 2004년 6월 29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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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이라크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도, 축하 팡파르도 없이 주권이양이 전격 이뤄졌다. 바그다드에서는 여전히 폭발음이 들렸고, 팔루자, 바스라에서는 저항세력과 미군의 교전이 계속됐다. 주권은 이양받았지만, 새 이라크의 앞날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명한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최대 종파인 시아파의 ‘실세 지도자’도, 새 이라크의 초대 대사로 부임한 미국 대사도, 저항세력을 이끌고 있는 과격 지도자도 그저 암중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주권이양 직후인 28일(현지시간) 오후 바그다드 공항.

새 이라크의 초대 미국대사로 임명된 존 드미트리 네그로폰테 전 유엔대사가 극비 보안 속에 비행기 트랩에서 내렸다.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인 1700여명의 대사관 직원을 진두지휘하는 네그로폰테 대사는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으로 새로 임명된 조지 케이시 대장과 함께 ‘주권을 이양받은 이라크’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인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점령국인 미국의 이라크 대사관은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를 대신해 이라크 과도정부의 ‘그림자 정부(shadow government)’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정의 끝, 수렴청정의 시작=네그로폰테 대사는 이달 8일 이라크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직후 “이라크에서 나의 일은 폴 브리머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하던 일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 브리머 행정관을 대신하지 않는다. 난 그저 미국의 외교관으로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펜실베이니아주 칼라일의 육군전쟁대학 연설에서 “주권이양 후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는 네그로폰테 대사가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네그로폰테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 세운 ‘이라크 민주화 5단계 계획’ 가운데 첫 단계인 주권이양을 제외한 △보안군 창설 지원 △인프라 재건 지원 △국제적 지원 확보 △2005년 1월 총선 실시 등 4단계를 완수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부임 전인 17일 “치안 확보를 위해 이라크군을 양성하고 민생안정과 경제개발을 위해 183억달러(21조 797억여원)의 재건비용을 지원하면 이라크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이미 베트남, 온두라스 등 내전을 치르거나 정정이 불안한 나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함께 일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유엔 대사 시절 2년반 동안 함께했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그의 후원자가 될 전망. 무엇보다 그에게는 13만8000명의 미군이 있다.

▽그는 식민지 총독인가?=네그로폰테 대사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실타래처럼 얽힌 이라크 정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의 ‘온두라스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결국은 ‘식민지 총독’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놈 촘스키는 최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네그로폰테 대사는 레이건 시절 온두라스 대사로 미 중앙정보국(CIA)의 세계 최대 지국을 지휘하면서 그곳을 기지로 삼아 니카라과를 황폐화시킨 장본인이며 당시 ‘식민지 총독’으로 불렸다”고 비판했다. 촘스키씨는 이어 “그 책임을 져야 할 네그로폰테 대사가 다시 이라크에서 똑같은 역할을 맡게 됐다”고 꼬집었다.

네그로폰테 대사는 특히 이라크 국민이 미국의 존재를 느끼지 않도록 ‘조용히’ 일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과도정부 인사들이 대부분 미국이 지명한 과도통치위원회(IGC) 출신이어서 미국의 꼭두각시란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존 네그로폰테 美 대사 신상명세▼

○1939년 7월 21일 영국 런던 출생

○50년대 예일대,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1964∼1968년 베트남 주재 대사관

정치담당

○1970년대 에콰도르 및 그리스 대사관 근무

○1981∼1985년 온두라스 대사

○1989∼1993년 멕시코 대사

○2001년 9월 유엔 대사

40년 현장 외교관…내전 치른 국가 주로 근무

헨리 키신저를 스승으로 모신 존 네그로폰테 대사는 거의 40년 동안 국무부에서 근무한 정통 외교관이다. 베트남, 온두라스, 에콰도르 등 내전을 치른 국가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아 이라크 정상화에 기여할 최고 적임자로 꼽혀왔다.

선박회사를 경영했던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예일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다. 첫 부임지인 홍콩을 거쳐 사이공(호치민)에 근무할 때 베트남어로 노래를 부를 정도로 현지 근무에 열성을 보였다. 에콰도르, 그리스, 온두라스 대사로 근무했으며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도 일했다.

하지만 온두라스 대사 시절 행적은 국제인권단체들이 이라크 대사 임명 저지 운동을 벌일 만큼 논란거리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니카라과 좌익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온두라스를 통해 반군(콘트라)을 지원하는 것을 방조 또는 묵인했다는 것이다. 니카라과 반군은 1년 사이에 4만명을 살육했는데 당시 공작을 펼쳤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과 군 관계자들의 공작본부가 온두라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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