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해야 청춘이다]<9>여성복 업계 ‘삼성’인 한섬 그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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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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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브랜드 ‘수미수미’ 만든 정수미씨 “나홀로 야근… 택시비로 월급 절반 날려도 옷이 좋았어요”

“니트는 실로 그리는 그림”



원단으로 만드는 보통 옷과 달리 니트의 디자인은 실 한 가닥에서부터 시작된다. 니트 전문 브랜드 ‘수미수미’의 정수미 디자이너는 “니트는 ‘실로 그리는 그림’이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 좋다”며 “해외 여성 소비자들이 즐겨 입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제공
“니트는 실로 그리는 그림” 원단으로 만드는 보통 옷과 달리 니트의 디자인은 실 한 가닥에서부터 시작된다. 니트 전문 브랜드 ‘수미수미’의 정수미 디자이너는 “니트는 ‘실로 그리는 그림’이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 좋다”며 “해외 여성 소비자들이 즐겨 입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제공
“퇴근 안 해요? 아가씨 때문에 빌딩 불도 못 끄고 이게 뭡니까?”

가느다란 실만 보고도 어떤 모양의 니트를 만들 수 있을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혼자 남아 야근하면 ‘빨리 퇴근하라’고 짜증내는 경비실 아저씨와 싸우고, 택시비로 월급의 반을 날려도 옷을 만드는 게 좋았다.

서른 살 무렵 여성복 업계의 ‘삼성’으로 불리는 한섬의 니트디자인팀장으로 일하던 정수미 씨(45)는 자신만만했다. 인기 영캐주얼 브랜드인 ‘시스템’ 매출의 절반이 그녀가 만든 니트에서 나왔다. 회사에서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지만 32세이던 2000년 사표를 냈다. 유학파와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한섬에서 지방대 출신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컸다.

정 씨는 니트 브랜드 ‘수미수미’로 이달 초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 ‘더 웨이브’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냈다. 니트 하면 할머니 옷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수미수미는 다양한 색깔과 신선한 디자인이 돋보여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다른 매장보다 세 배 이상 많다. 한섬에 사표를 낸 지 13년 만이었다.

정 씨는 “혼자 사업을 하다 빚더미에도 앉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도움이 되는 실패였다”고 말했다. 2000년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니트 프로모션(일종의 디자인 제조) 사업을 시작하자 주문서가 밀려들었다. 한섬 출신 니트 디자이너가 사업을 한다니 주요 여성복 브랜드들이 디자인과 제조를 의뢰해왔다. 동대문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지인을 도울 때는 장사가 너무 잘돼 바구니로 돈을 쓸어 담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지인이 뒤통수를 쳤다. 정 씨는 “지인에게서 투자를 받아 매장을 냈는데 투자 계약서에 매일 일정액을 줘야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며 “장사가 잘돼도 밑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 1년도 안 돼 빚잔치를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단추회사 등 거래처 사업자들이 그녀를 돈 떼어먹은 사기꾼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실패는 아팠다. 우울증에 걸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만 머물렀다. 그때 그녀를 바깥세상으로 이끈 사람은 친정엄마 같았던 한섬의 문미숙 감사와 초등학교 동창인 남편이었다. 매일 마지막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던 그녀를 아낀 한섬에서 회사로 다시 돌아오라고 권한 것이다.

2003년 ‘마인’ 니트팀장으로 한섬에 돌아왔지만 꿈은 여전히 마음속에 있었다. 2005년 남편과 함께 ‘짜임’이라는 니트 프로모션 회사를 세우고 철저하게 준비해 지난해 ‘수미수미’를 론칭했다. 그녀는 롯데백화점 니트 브랜드 매장인 ‘니트앤노트’에서 매출 1등 상품을 만들고 캐시미어 스웨터 1만 장 ‘완판’ 신화를 일으킨 실력파라 롯데 측에서 적극적으로 팝업스토어 개설을 제안했다. 롯데는 하반기 수미수미의 단독 매장 입점을 검토하고 있다.

정 씨가 목표로 삼고 있는 시장은 해외다. 지난해부터 프랑스 파리 패션박람회 ‘후즈 넥스트’, 미국 컨템퍼러리 박람회 등에 나가 수미수미 옷을 10만 달러어치 이상 팔았다. 그는 “그림의 떡 같은 ‘작품’보다 많은 사람이 즐겨 입는 ‘상품’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나이와 관계없이 꾸준히 해외 시장을 두드리고 세계 최고의 니트 브랜드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수미수미#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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