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코노미’ 국내 현장을 가다]<2>‘설록다원’

  • 입력 2009년 3월 9일 02시 57분


제주 서귀포시 도순동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의 ‘설록다원 도순’. 차나무는 평소 짙은 녹색이지만 4월 초가 되면 연한 녹색의 새 잎이 자라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제주 서귀포시 도순동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의 ‘설록다원 도순’. 차나무는 평소 짙은 녹색이지만 4월 초가 되면 연한 녹색의 새 잎이 자라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주 설록다원 서광’ 내에 위치한 오설록 티 뮤지엄. 연간 5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사진 제공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제주 설록다원 서광’ 내에 위치한 오설록 티 뮤지엄. 연간 5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사진 제공 아모레퍼시픽
100만평 녹차밭 운영 아모레퍼시픽 ‘설록다원’

황무지서 일군 녹색성장… 온실가스 年1만7000t 감축

《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제주 설록다원(茶園) 서광’.

제주공항에서 차로 40분간 달려 도착한 이곳에는 짙은 녹색의 차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보름 뒤면 하나둘 나올 새 잎을 기다리며 서리 방지용 대형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온통 현무암 밭이었어요. 다들 절대 쓸 수 없는 ‘광챙이’(목초가 자라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모지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라 했지만 지금은 차나무 570만 그루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계열사로 이 다원을 관리하는 장원설록차 이진호 설록차연구팀장은 이곳을 “자연과 과학이 만나 재탄생한 생명의 땅”이라고 소개했다.

1981년 3월 아모레퍼시픽은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지시로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제주도 드넓은 황무지에 녹차 밭 가꾸기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커피에 밀려버린 한국 전통 차(茶) 문화를 안타까워한 서 회장이 직접 녹차 재배에 뛰어든 것.

아모레퍼시픽은 그로부터 10여 년에 걸쳐 변변한 장비도 없이 굴착기로 돌밭 49만5000m²(약 15만 평)을 개간했다. 현무암 지대라 늘 부족한 식수를 구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지하 우물까지 파가며 녹차 밭 가꾸기에 ‘다걸기(올인)’했다.

그 덕분에 20여 년이 지난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서광다원 외에 제주 서귀포시 도순동 ‘설록다원 도순’과 남제주군 남원읍 한남리 ‘설록다원 한남’, 전남 강진군 ‘설록다원 월출산’ 등 총 330만 m²(약 100만 평)의 녹차 밭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다원에서는 지난해 국내 전체 녹차 잎 생산량의 24%에 이르는 850t의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들 녹차 잎을 원료로 녹차가루와 티백 제품 등을 생산해 지난해 90억42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

국내 녹차잎 24% 생산

차 전문전시관도 열어

제주 그린관광 명소로

○ 부서별 기후변화 대응팀 운영

다원은 녹차 생산에 따른 경제적 효과 외에 이산화탄소 감축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다원 내 570만 그루의 차나무와 다원 주변 미개간지에 심은 78만 그루의 해송 삼나무 활엽수 등이 연간 4만820t의 이산화탄소(CO₂)를 흡수해내고 있기 때문.

이는 아모레퍼시픽이 화장품과 녹차 제품을 생산하고 운송하는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총량 2만3780t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 회사는 결과적으로 연간 1만7000t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김효정 홍보팀 부장은 “창업주 의지가 워낙 강력했던 만큼 앞으로도 다원 가꾸기 사업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2015년까지 총 3차에 걸쳐 132만 m²(약 40만 평)에 이르는 미개간지의 조림 작업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림 사업과 더불어 기술 혁신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절감 작업도 한창이다.

이 회사는 2007년부터 본사와 생산부서, 영업부서, 기술연구원별로 담당 실무자로 결성된 기후변화대응 담당 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 팀은 사업장별로 온실가스 배출원을 규명하고 배출량은 외부전문가에게 검증받는 업무를 담당한다.

또 같은 해 사용한 에너지량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주는 자체 온실가스 산정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과학적으로 감축 목표량을 설정하겠다는 목표다.

○ 외국인 年 10만명 다녀가

다원은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뿐 아니라 관광 수요도 창출하고 있다.

다원 자체도 그렇지만 다원 안에 있는 국내 최초 차 전문 전시관 ‘오설록 티 뮤지엄’은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관광상품이다.

2001년 9월 문을 연 이 박물관은 별도 입장료 없이 무료로 운영해 지난해 5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이날도 강풍이 거세게 불어 체감 온도가 영하에 가까웠지만 서광다원에는 일본과 중국 관광객을 실은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특히 아시아 관광객은 물론이고 동양 차 문화가 낯선 서양 관람객을 대상으로 영어 및 일본어, 중국어로 차 문화 소개 및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제주 지역 대표 관광지로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매년 이곳 전체 방문객 중 20% 가까이가 외국인 관광객일 정도다. 아무도 찾지 않던 황무지가 다원으로 변모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달러 박스’가 된 셈이다.

김지연 오설록사업팀 과장은 “인근에 중문 컨벤션센터가 있다보니 국제회의나 세미나 등에 참석했다가 들르는 손님이 많은 편”이라며 “2007년 방문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친필로 감사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박물관은 올해 6월 제주도에서 열릴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현재 대대적으로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등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해마다 채엽(採葉·찻잎을 수확하는 것) 시기인 4월 말 진행하는 ‘설록 페스티벌’은 특히 국내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다.

참가자 누구나 3000원만 내면 직접 녹차 잎을 따는 것부터 180∼200도에서 볶아 수분을 날리는 ‘덖음’ 과정 및 수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찻잎을 손으로 비비는 ‘유념’ 과정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서귀포=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제품에 탄소배출량 표시… 신문지 재활용 용기도

‘무한(無限) 환경 책임주의.’

아모레퍼시픽이 내세우는 기업 철학이다. 제품 생산부터 폐기 단계를 통틀어 ‘친환경 공정’을 실천하겠다는 것.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을 제품에 모두 표시하는 ‘탄소 성적표지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자들이 직접 온실가스 배출 이력 정보를 확인하고 저탄소 제품을 골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2월 ‘미쟝센 펄샤이닝 모이스처 샴푸’에 이 제도를 처음 적용했다. 자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산정 결과 샴푸 원료와 포장재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자 샴푸 용기 무게를 줄이고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불량제품을 최소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아모레퍼시픽은 앞으로 이 제품 외에 더 많은 제품에 탄소 성적표지를 부착할 예정이다.

과대포장을 자제하고 포장재 제작에 쓰이는 자원을 최소화하는 것도 ‘에코 공정’의 주요 단계다.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의 포장재를 사용하거나 콩기름 잉크를 쓰는 등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실제 프랑스 유기농 인증기관인 ‘에코서트’로부터 국내에서 처음 친환경 유기농 화장품으로 인증 받은 ‘이니스프리’는 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용기에 담겨 있다.

계란 박스와 모양 및 색이 비슷해 일명 ‘계란판 상자’라고 불리는 이 용기는 재활용 목적으로 모은 신문지를 펄프로 갠 뒤 용기 틀에 부어 굳히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유해 접착제가 아닌 수성 접착제를 사용해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이 회사는 물류 이동용 차량에 공회전 방지 시스템을 설치하는 한편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포장 재질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포장재 사용 면적을 줄이거나 유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 등을 활용해 친환경 포장재를 계속 개발할 것”이라며 “아울러 포장을 줄여 얻게 되는 비용 절감분을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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