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업도시를 가다]<2>스위스 ‘추크 州’

  • 입력 2008년 10월 28일 02시 59분


스위스 고원의 중앙에 위치한 추크 주는 불리한 입지조건 속에서도 법인세율을 크게 낮추는 등의 노력으로 글로벌 기업 현지법인들을 대거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인구 10만8571명의 추크 주에는 2만7308개의 기업이 있다. 추크=황진영 기자
스위스 고원의 중앙에 위치한 추크 주는 불리한 입지조건 속에서도 법인세율을 크게 낮추는 등의 노력으로 글로벌 기업 현지법인들을 대거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인구 10만8571명의 추크 주에는 2만7308개의 기업이 있다. 추크=황진영 기자
파격적 법인세로 투자유치… 인구 10만에 기업 2만7308개

세율 13%로 한국의 절반… 버거킹-아디다스 등 입주 일자리 넘쳐

창업절차 길어야 한달… 외국인학교 3곳 세워 교육문제도 해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한국의 중소기업 케스텍코리아는 올해 5월 유럽 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현지 법인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놓고 2년간 검토한 끝에 스위스 취리히 부근의 추크 주를 선택했다. 자사(自社)의 물류 공장이 있는 프랑스 리옹, 대한항공 직항편이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이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추크 주에 밀렸다. 윤호석 케스텍코리아 유럽 법인장은 “비유하자면 구미 기업이 아시아 법인을 서울이나 중국 상하이(上海), 일본 도쿄(東京) 등 쟁쟁한 대도시를 제쳐 두고 인천공항 옆에 있는 김포에 두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26개 주 중 가장 작은 추크 주는 면적이 239km²로 거제도(393km²)의 60%밖에 안 된다. 인구도 10만 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케스텍코리아는 유럽시장 공략의 발판이 될 법인을 왜 여기에 세웠을까.

○ 글로벌 기업들의 거점

취리히 공항에서 남쪽으로 뻗은 왕복 4차로 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자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추크 시가 눈에 들어왔다. 추크 주의 중심인 이 시에는 고풍스러운 석조(石造) 건물이 대부분인 스위스의 다른 도시와 달리 네모반듯한 모양의 현대식 건물이 곳곳에 있었다.

건물 앞에 선명하게 새겨진 입주 기업들의 로고는 이랬다. 버거킹 유럽 본부, 글렌코 유럽 본부, 지멘스 빌딩 테크놀로지 유럽 본부, 아디다스 스위스 법인, 셸 스위스 법인, 휴고보스 스위스 법인….

글로벌 기업들이 내로라하는 대도시를 마다하고 스위스의 작은 도시에 유럽 본부나 스위스 현지 법인을 설립한 가장 큰 이유는 낮은 법인세율 때문이다. 추크 주의 법인세율은 업종에 따라 8.8∼16%(평균 13%). 한국의 법인세율이 27.5%, 독일 29.6%, 영국 28.0% 등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낮은 세율이다.

산과 호수가 조화를 이룬 천혜의 자연환경과 편리한 교통, 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율 등을 갖춘 이 지역은 외국 기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인구 10만8571명의 추크 주에 있는 국내외 기업 수는 2만7308개에 이른다.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일자리도 급증해 추크 주의 일자리는 7만여 개나 된다. 추크 시만 보면 인구(3만 명)보다 일자리(3만1000개)가 더 많다.

일자리가 넘치다 보니 소득도 높다. 추크 주의 2006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8만2000스위스프랑(약 9900만 원)으로 바젤 주(8만5000스위스프랑)에 이어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높다. 같은 해 스위스 전체 1인당 국민소득(4만5000스위스프랑)과 비교하면 1.5배가 넘는다.

○ 낮은 세금은 기본

“우리는 세금 말고도 자랑할 게 많은데 세금 문제만 물으시네요.”

현지에서 만난 베르나르트 네이다트 추크 주 경제담당관은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에서 미리 e메일로 보낸 질문이 세금 부분에 집중된 데 대해 다소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세금만 낮춰서는 기업을 유치할 수 없다”며 “수준 높은 교육, 편리한 교통, 쾌적한 환경 등 살기 좋은 여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윤호석 법인장은 “추크를 선택할 때 낮은 법인세율이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취리히 공항에서 가깝고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이라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살아보니 대도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쾌적한 주거 환경까지 갖춰 무척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추크 주에는 외국인 학교가 3개나 있다. 모두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다. 추크 주는 이 학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교육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다.

여기에 투자되는 재원(財源)은 대부분 기업이 내는 세금에서 나온다. 추크 주가 한 해에 걷어 들이는 세금은 75억 스위스프랑(약 9조2880억 원)이다. 대부분이 기업체에서 걷는 법인세다.

‘기업 친화적 행정’도 추크 주의 경쟁력 중 하나다. 서류 제출에서 법인 설립까지 걸리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 정도로, 한국에서처럼 복잡하기만 한 행정절차(red tape)는 찾아볼 수 없다.

추크 주에는 외국에서 이사 왔을 때 맞닥뜨리는 각종 행정절차 처리를 돕는 부서가 따로 있어 연착륙을 도와준다. 자녀들의 전학 문제 등 이주 초기에 생기는 문제를 도와주는 전담 부서도 있다.

○ 역발상을 통해 난관 극복

추크는 스위스 고원(高原)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큰 제조업 공장이 들어서기에 불리한 입지다.

추크 주는 이런 불리한 여건을 ‘역(逆)발상’으로 풀어나갔다. 큰 공장이 오기 힘들면 작은 기업체를 많이 유치해 극복하는 전략이었다. 1947년 관련 법령을 바꿔 법인세를 낮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크 주에 있는 2만7000여 개의 기업 가운데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 많다. 회사별 고용 인원도 독일 전기·전자업체인 지멘스가 2000여 명, 스위스 제약회사인 로슈가 1600여 명을 고용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수십 명 수준이다.

직원 1명이 법인을 세운 ‘1인 법인’도 많다. 1인 법인은 고용창출 효과는 없다. 하지만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이 추크 주로 흘러들어 오고, 향후 고용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상묵 KOTRA 취리히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은 “추크 주는 객관적인 여건은 좋지 않지만 최대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 유치에 성공했다”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 지방자치단체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말했다.

추크=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8%는 연방, +α는 州정부 수입… 각 州 α 낮춰 유치 경쟁

■ 스위스 법인세 ‘8%+α’ 비밀

추크 주가 법인세를 파격적으로 낮출 수 있는 이유는 스위스의 독특한 법인세 체계 덕이다.

스위스의 법인세는 ‘8%+α’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8%는 연방정부에 내야 하는 부분으로 모든 주가 같다. 주 정부의 수입이 되는 ‘α’는 각 주에서 재량으로 정한다. 이 때문에 스위스의 26개 주는 모두 법인세율이 다르다.

취리히나 제네바 같은 대도시가 있는 주는 대체로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20% 이상이다. 반면 대도시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입지조건이 좋지 않은 주는 법인세율이 그보다 낮은 것이 보통이다.

법인세를 기업 유치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추크 주의 평균 법인세율은 13%로 스위스에서 가장 낮다.

베르나르드 네이다트 추크 주 경제담당관은 “매출이 1000만 달러인 기업에 30%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대신 세율을 10%로 낮춰 매출 1억 달러 기업을 많이 유치하자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각 주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몫인 ‘α’를 낮추다 보니 스위스의 평균 법인세율도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네덜란드(25.5%) 독일(29.6%) 이탈리아(31.4%)보다 낮은 21.2%에 그친다.

김상묵 KOTRA 취리히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은 “유럽의 기업들이 잇달아 스위스로 본사를 옮기자 EU 회원국들이 스위스에 법인세를 올리라고 압박하지만 스위스는 ‘각 주정부 소관’이라며 이들의 압력을 피해 간다”고 전했다.

한국은 법인세가 국세(國稅)이기 때문에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모두 국고(國庫)로 귀속된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기업에 법인세율(27.5%)을 낮춰주고 싶어도 그럴 여지가 없다.

추크=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정경준 산업부 차장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황진영 조용우 기자

▽네덜란드 벨기에 폴란드 헝가리 일본=김창덕 임우선 기자

▽미국 캐나다=김유영 기자

▽중국 인도=박형준 기자

(이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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