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유동성 랠리’라 부르기엔 아직 이르다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지난해 10월 코스피가 장중 900선 밑으로 떨어진 이후 거의 45%나 상승했다. 주가가 두세 배 상승한 종목도 적지 않다. 코스닥 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일 정도로 반등 폭이 크다. 그래서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경기 회복을 감지한 발 빠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증시로 돌아오고 있다는 주장과 갈 곳 없는 돈이 단기 투기를 목적으로 증시로 유입되는 유동성 랠리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선 갈 곳 없는 돈이 증시로 몰려든다는 주장은 과거에도 흔하게 쓴 말이기는 하나 사실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돈은 아무리 갈 곳이 없어도 기대수익률이 없는 곳에 절대 가지 않는다. 주식보다 나은 매력적인 투자처가 있는 한 증시로 돈이 유입되기 힘들다. 더구나 금융위기가 진행 중인데도 증시로 돈이 들어온다면 이는 주식이 이 모든 위기를 반영하고도 충분히 투자할 만한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고 믿는 투자자가 생기고 있다는 뜻이다.

유동성 랠리라는 지적도 다소 이른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이후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면서 상당한 통화량이 시중에 공급된 것은 사실이나 이 유동성은 아직 대부분 금융기관에 머물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들은 여전히 자금 부족 상태다. 통계를 보면 상장회사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년 사이 22% 증가해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다시 100%를 넘어섰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부채비율이 1년 사이 8% 증가한 802조 원으로 늘어나 가구당 평균 4000만 원 안팎의 부채를 안고 있다. 또 총 개인금융자산은 같은 기간에 2% 감소한 1677조 원 규모로 1년 사이 40조 원이 줄었다.

이처럼 개인, 기업의 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에 투자할 자금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유동성 랠리를 주장한다면 이는 단기 금융상품에 해당되는 말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머니마켓펀드(MMF)는 65조 원에서 125조 원으로 증가했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나 은행의 1년 미만 예금이 80조 원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 자금은 증시가 상승하는데도 꾸준히 증가해 단기 대기성 자금이 증시로 넘어오고 있다는 주장은 빈약하다. 또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1조3000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즉 외국인은 아직 본격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최근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은 1677조 원의 개인 금융자산 중 극히 일부가 금융위기 이후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금씩 주식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동성 랠리는 바닥에서 반등하는 단계가 아니라 주식이 상투를 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동성 랠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기간에 급등했기 때문에 신중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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