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4>세계 경제질서 재편될까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54분


막내리는 달러 독주회… 유로 - 엔 - 위안화와 협연 체제로

적자 늘고 소비 줄어… 美, 금융위기 산 너머엔 침체터널

美 영향력 대체할 국가 없어… 경제패권 다극화 시대 예고

“달러화 시대의 종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이 미국으로부터 유럽과 신흥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매킨지 보고서)

전문가들은 미국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통해 이번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겠지만 정작 더 큰 위기는 ‘그 다음’에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전이되면서 고통스러운 장기 경기침체의 터널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산업이 초토화되면서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 이후 기축통화의 위치를 누려온 달러화 패권이 희석되고 국제사회에 ‘전혀 새로운 질서’가 태동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침체의 터널로 들어가는 미국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제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 경기침체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8월 산업생산은 전달에 비해 1.1% 감소해 2005년 9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8월 실업률은 2003년 9월 이후 최고치인 6.1%를 나타냈다.

기업 활동이 둔화되고 실업이 늘면서 개인들의 소득이 줄고 소비지출도 감소하고 있다. 7월 개인 소득은 0.7% 감소해 2005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같은 달 물가상승을 반영한 실질 소비지출은 0.4% 줄어들어 2004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소비침체가 계속된다면 국내총생산(GDP)의 70% 정도를 소비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월가의 붕괴는 미국 경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 부문의 약세를 금융산업의 막대한 수익률로 상쇄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산업이 전 세계에서 자본력과 첨단 투자기법을 활용해 벌어들이는 투자수익은 매년 수조 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투자은행(IB) 등 거대 금융산업이 무너지면 미국 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선 나오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에서 다극체제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GDP는 13조8112억 달러로 세계 총 GDP의 25.4%를 차지했다. 2위인 일본(4조3767억 달러)의 3배나 된다.

하지만 그 비중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미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만 해도 30.6%였다.

그 사이에 중국과 인도를 앞세운 아시아가 도약했다. 2006년 기준으로 세계 GDP에서 아시아 비중은 24.6%로 미국의 26.7%를 바짝 뒤쫓고 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금융경제 역사학자인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21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위기가 미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며 “곧 세계 권력 질서가 재정립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 맞설 경제권으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유럽연합(EU),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이 거론된다.

이 중 어떤 경제권도 현재 미국이 누리는 경제 패권을 갖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미국의 패권을 나눠 가지는 다극체제(multipolar)가 구축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미국이 그동안 대규모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잘나갔던 이유는 중국과 일본 등이 미국 등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으로 다시 들여와 국채 등을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는 현저히 줄었다. 이에 따라 달러 자산 비중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앞으로 빚을 내서 경제를 유지하는 일이 힘들어질 것이다.

더구나 이번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대규모 구제금융과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그렇게 되면 재정적자는 눈 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도 점쳐진다. 달러화 가치는 더욱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달러화가 유로화, 엔화, 위안화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나눠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미국의 초강대국 위치를 떠받쳐온 또 다른 한 축인 ‘팍스 달러리엄’ 시대가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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