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2>한국경제 ‘관리’ 필요한 6가지

  • 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4분


[1] ‘금융불안 → 자산가치 하락 → 은행 부실’ 악순환 우려

[2] 기업 자금사정 악화-신규투자 주저

[3] 세계시장 침체로 버팀목 수출 흔들

[4] ‘실적악화→소득감소’침체 장기화

[5] 불안한 외국인, 신흥시장 투자 회수

[6] 신용경색 여파로 유동성 확보 차질

《올해 한국 경제는 갖가지 위기설에 시달렸다. 그중 외국인들이 채권을 한꺼번에 팔고 나갈 것이라는 ‘9월 위기설’은 이달 초 허망하게 끝났다. 애당초 현실화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또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물가 폭등에 따른 지구촌 경제공황’의 가능성도 한 발짝 멀어진 상태다. 하지만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실제 한국 경제에 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실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돼 있어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알기 어렵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나름대로 몇 가지 위기 시나리오를 작성해 놓고 대비하고는 있지만 “시장을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 보면 미국의 금융위기는 △국내 자산가치 급락 △실물경제 위축과 수출 감소 △국내 금융시장 불안 증폭 등의 경로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중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이미 진행되는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 주체들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 국내 자산가치 급락

▽경로① 대출 부실화=우선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아 주식과 부동산 가격 등이 크게 하락할 경우 실물경제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국내 증시가 세계 증시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동산 경기 하강으로 집값마저 폭락하면 국민이 보유한 자산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집을 팔아도 대출을 못 갚는 이른바 ‘깡통 아파트’가 생겨날 수 있다. 이는 곧 은행의 부실화로 연결된다. 이른바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다. 여기에 건설경기 침체로 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마저 부실화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경로② 기업 자금조달 차질=증시 침체가 가속화하면 가뜩이나 신용경색으로 차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이 더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기업의 투자 감소 및 고용 부진을 불러와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 또 기업들이 보유한 유가증권 등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부채가 많고 현금 유동성이 악화된 기업들의 도산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기업들이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는 데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높아져 신규 투자를 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경기 위축과 수출 감소

▽경로③ 경상수지 적자 누적=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되면 한국의 대외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한국의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는 시나리오다.

수출이 줄어들면 경상수지 적자가 쌓인다. 한국은 이미 올해 1∼7월 78억 달러의 누적적자를 냈다. 달러가 귀해지니 자연스럽게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실물부문 위기가 다시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형국이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실장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들도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며 “결국 지난 몇 년간 수출로 성장해 온 한국이 큰 타격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로④ 기업 수익성 감소=수출이 줄어들면 기업 수익성도 나빠진다. 특히 한국 경제는 물가 상승과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 등으로 소비 여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 내수 침체가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 결국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면 고용 창출과 가계 소득증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전체 한국 경제의 성장률도 떨어지고 만다.

동아시아 경제 흐름에 정통했다는 평가를 받는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도 이달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출 감소로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면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부족해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며 “한국경제는 금융보다는 실물 부문의 위기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 국내 금융시장 불안 증폭

▽경로⑤ 외국인 투자금 회수=금융위기가 장기화하면 불안감을 느끼는 국내외 투자자들 사이에 달러화나 금 등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강해진다. 그러면 한국 등 신흥시장에서부터 돈을 빼내 자금을 확보하려 한다.

이런 현상은 이미 진행 중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올해 들어 이달 19일까지 28조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주가의 추가 하락을 일으킬 뿐 아니라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를 갖고 나가는 과정에서 환율 상승도 부추긴다. 이 경우 정부는 부족한 달러를 시장에 풀어야 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의 감소도 불가피하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외국인의 투자금 회수를 유발하는 이 고리는 아주 견고하기 때문에 신용경색이 이어지는 한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경로⑥ 금융기관 유동성 위기 및 대출 억제=또 신용경색으로 금융기관의 자금 흐름이 계속 막히게 되면 국내 금융기관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결국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 자체를 줄일 수 있다. 가계수지와 기업의 자금사정이 악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대출 금융기관들이 위험관리를 강화한다”며 “결국 대출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국내 금융시장에도 사방에 ‘덫’▼

[1] 中企 대출 [2] 622조 가계대출 [3] 저축銀 PF [4] 외화유동성

불황 겪는 中企, 통화옵션 ‘키코’로 1조원 손실

저축銀 PF 14.3% 연체… 은행권 부실 부를수도

한국의 금융시장은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대외적 위험 요인 외에도 △중소기업 및 가계 대출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외화유동성 부족 등 여러 가지 리스크를 내부적으로 갖고 있다.

중소기업 및 가계 대출 부실 우려는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면 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연체율은 2006년 말 1.07%, 2007년 말 1.00%에서 올해 6월 말 1.14%, 7월 말 1.43%로 급등하는 추세다. 국내 은행 거래기업 중 워크아웃에 들어간 중소기업 수는 올해 1분기(1∼3월) 126개에서 2분기(4∼6월) 245개로 늘었다.

경기 둔화로 가뜩이나 힘든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더욱 악화된 요인 중 하나는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피해가 크게 늘어 9월 현재 130여 개 중소기업의 손실액만 해도 1조 원에 육박한다.

가계대출 부실도 큰 골칫거리.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가계대출(622조8948억 원)과 신용카드 등에 의한 외상구매(37조4112억 원)를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660조3060억 원으로 3월 말(640조4724억 원)보다 19조8336억 원(3.1%) 늘었다. 빚이 금융자산보다 빨리 늘면서 개인의 금융자산을 금융부채로 나눈 비율은 4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연체율 증가율도 심상치 않다. 저축은행은 그동안 무리한 PF대출을 하는 경우가 많아 PF대출이 저축은행 전체 여신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연체율은 2006년 말 9.6%에서 지난해 6월 말 11.4%, 올해 6월 말 14.3%로 급등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금융 위기 가능성 점검과 대책’ 보고서에서 “시중은행의 PF대출 금액도 2006년 말 25조900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47조9000억 원으로 늘었다”며 “연체율도 0.23%에서 0.68%로 크게 증가해 은행권의 부실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아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외화유동성 부족 우려도 현재 한국 금융시장이 안고 있는 위험 요인 중 하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단기채무는 2006년 1분기부터 장기채무를 앞지르기 시작해 올해 6월 말 현재 660억 달러로 장기채무 610억 달러보다 50억 달러 많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국내 은행의 중장기 해외자금 조달이 힘들어지면서 단기채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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