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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국가’에서 배운다]<5·끝>마지막 관건은 사회적 합의

입력 2008-02-28 02:55업데이트 2009-09-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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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주최로 열린 플렉시큐리티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주제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 제공 EU
설득-통합 리더십으로 ‘유럽의 병자’ 치유

정치권, 이념-정파이익 대신 국익 앞세워

감세-규제개혁 등 ‘입에 쓴 처방전’ 추진

노사도 “우린 한배” 사회대타협 받아들여

경기침체 터널지나 ‘성장의 열차’ 가속도

5일 대형빌딩이 밀집해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국제금융센터 지역. 취재기자와 함께 걷던 도클랜드 개발청의 크리스 가드 씨는 갑자기 기자의 팔을 잡아끌며 “여기가 예전에 어땠는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간 곳은 다국적 컨설팅사인 액센추어가 입주한 대형 건물 옆 허름한 창고. 전에는 이런 건물뿐이었다는 설명이다.

가드 씨는 “내가 1994년 대학원을 졸업할 때 동기 26명 중 아일랜드에 남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 나도 시카고로 떠났다”며 “그런데 1997년 돌아오니 3년 새 일자리가 넘치는 나라가 됐다. 이제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취직하러 아일랜드로 온다”고 뿌듯해했다.

1921년 영국에서 독립 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일랜드는 ‘유럽의 지진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나라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달러 이상의 나라로 변화하도록 물꼬를 튼 집단은 정치 지도자들이다.

○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 나서

‘유럽의 지진아(아일랜드), 유럽의 병자(독일), 영국병(영국), 네덜란드병(네덜란드)….’

선진국도 위기는 있었다. 대외 환경이 변했을 때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성장이 부실해지면서 실업이 늘어났다.

하지만 입에 쓴 개혁 정책을 펴고, 사회 갈등을 리더십과 사회적 합의로 극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단기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개혁을 주저한 나라는 모두 주저앉았다.

“독일은 이제 ‘유럽의 병자’가 아니다.”

2006년 8월 21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독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들었던 비아냥거림에 대한 ‘복수’였다.

독일 경제가 살아난 것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부터 ‘어젠다 2010’이라는 이름 아래 해고를 쉽게 하고 기업 세금 부담을 줄이며 연금을 깎는 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며 ‘독일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면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 멕시코와 아시아에서 통화위기가 발생하고 경제계의 경고가 잇따르는데도 ‘1페소=1달러’ 환율을 고집했다. 선거를 앞두고 물가상승을 두려워 한 포퓰리즘이었다. 부패한 지도층 인사들은 고평가된 페소를 달러로 바꿔 해외로 빼돌렸다. 이는 2001년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졌다.

○ 실용 노선 통해 국가 구성원 역량 결집

다시 일어선 국가들의 정치권은 위기상황에서 이념이나 정치적 득실보다 국익을 택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실용 노선을 택해 국민의 역량을 모았고, 이를 위해 좌우 정파가 연정을 구성하기도 했다.

파산 직전의 아일랜드를 살려낸 1987년 사회협약 성공의 뒤에는 제1야당인 아일랜드민족당 앨런 듀크스 대표의 결단이 있었다. 그는 더블린 시내 탈라에서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전폭 협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명한 ‘탈라 선언’이다. 야당이 재정 지출을 삭감하는 예산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줬기 때문에 집권 공화당은 사회협약의 결과물인 ‘국가재건프로그램’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다.

1994년 덴마크 노동시장 개혁은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 연합정부에서 추진했다. ‘협상의 대가’라는 포울 뉘루프 라스무센 총리는 우파인 자유당의 감세와 재정지출 축소 요구에 대해 세금 수준은 유지하면서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줄이는 타협안을 냈고,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국은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요 정당이 계층보다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모든 정책을 정치적 이슈로 삼아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개혁 정책이 표류하는 일이 잦다.

○ “우리는 동반자” 어느 한쪽 양보 강요 안 해

위기 극복에 성공한 국가들은 사회 모든 부문이 개혁에 동참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노사정 협의체인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의 로리 오도넬 이사는 아일랜드 재도약의 발판이 된 1987년 사회협약의 성공에 대해 “절박한 위기감 속에 노사정 3자가 모두 자기 몫을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한 대신 기업은 일자리 창출을, 정부는 복지지출 유지를 약속했다.

마이너스 성장을 겪던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며 재도약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노조가 9%의 실질임금 하락을 받아들이자 기업주들은 노동시간을 5% 단축하고 일자리 공유를 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은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 노조의 양보와 결단이 절실했지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말은 듣기 힘들었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김형기 교수는 한국의 노사 관계에 대해 “한국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버리면 된다’는 생각이고, 노동계는 양보를 운동 약화로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동시장 유연하게 + 사회안전망 튼튼하게

덴마크식 노동모델 가능할까▼

주요선진국 노동시장 규제지수 (2003년)
미국22스웨덴42
덴마크25아일랜드49
영국28프랑스50
뉴질랜드32독일51
캐나다34한국51
일본37네덜란드54
숫자가 클수록 규제가 강함(노동시장이 경직적임)을 의미. 자료: 세계은행

영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1월 덴마크 경제 성공의 핵심으로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를 들었다. 노무현 정부도 청와대에서 덴마크 모델을 연구한 적이 있다.

‘유연안정성’으로 번역되는 플렉시큐리티는 ‘플렉서블(flexible·유연성)’과 ‘시큐리티(security·사회안전망)’의 합성어로,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함께 추구하는 정책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해고, 근무시간, 임금, 업무재배치에 대한 것이며 안정성은 직장, 소득, 구직활동에 대한 것이다.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는 기업이 해고는 자유롭게 하되 실직자에게 실업 급여와 다양한 직업 훈련을 제공해 소득을 보장하고 재취업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덴마크식 플렉시큐리티 모델을 도입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여러 가지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증세(增稅) 부담. 덴마크에서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건 정부가 실직자에게 이전 소득의 70∼90%에 해당하는 높은 실업 급여를 주기 때문이다. 2000∼2001년 덴마크의 재취업 지원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1.58%였지만 한국은 0.31%에 불과했다.

또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는 덴마크와 크게 다르다.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지만 정규직과 제조업 직종이 그렇고 비정규직과 서비스업은 지나칠 정도로 불안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성 강화를 추진하면 저항이 극심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에 소득 격차가 큰 현실에서 ‘해고를 쉽게 하고 직장 이동을 보장하는’ 식의 개혁이 잘 통하지 않으리라는 지적도 많다.

한국노동연구원 황수경 연구위원은 “덴마크는 기업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노동시장이 비교적 균질하지만 한국은 대기업에서 해고돼 중소기업으로 옮기면 생활수준이 현격히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덴마크 올보르대의 피어 콩쇼 매드슨 교수는 플렉시큐리티를 한국에 적용할 방법에 대해 “꼭 덴마크식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니며, 이를테면 고용을 보장하되 근로자의 임금이나 근무 시간에 대한 기업의 권한을 확대하는 식의 조합을 고려해 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싱가포르=박용 기자 parky@donga.com

코펜하겐·올보르=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더블린=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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