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을 가다]<13>치즈가공기업 호주 ‘베가치즈’

  • 입력 2007년 2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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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치즈를 만들어요”호주 베가의 치즈가공 공장에서 한 직원이 컴퓨터로 치즈가공 공정을 분석하며 치즈에 들어갈 원료와 숙성 과정을 통제하고 있다. 베가=박용  기자
“컴퓨터가 치즈를 만들어요”
호주 베가의 치즈가공 공장에서 한 직원이 컴퓨터로 치즈가공 공정을 분석하며 치즈에 들어갈 원료와 숙성 과정을 통제하고 있다. 베가=박용 기자
《지난달 22일 호주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420km 떨어진 인구 5000명의 소도시 베가(Bega). 마을 주변은 오랜 가뭄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다. 강줄기는 바닥을 드러냈고, 주민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정원에 물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목초지는 달랐다. 잘 가꿔진 푸른 목초지는 소들이 풀을 뜯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호주 최대의 치즈 브랜드인 베가치즈가 여기서 자란 젖소의 우유로 만들어진다. “Bega means cheese(베가는 치즈라는 뜻이지요).” 이 지역에서 24년간 살았다는 앤드루 레몬 씨에게 ‘베가(원주민 말로 큰 야영지를 뜻한다고 함)’의 뜻을 묻자 ‘치즈’라는 농담이 돌아왔다. 베가치즈가 없는 지역사회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이 지역 주민 열 명 중 한 명이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남반구 최대의 치즈 공장

1899년 이곳 목장에서 시작한 베가치즈는 지난해 매출 2억8000만 호주달러(약 2041억 원)에 세계 50개국에 치즈를 수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호주 치즈시장의 12%를 차지하는 최대 치즈 브랜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하는 치즈까지 합하면 호주 치즈시장 점유율이 28.2%에 이른다.

가공 치즈 공장 내부는 반도체나 자동차 공장 못지않게 자동화돼 있었다. 일하는 사람보다 로봇이 먼저 눈에 띄었다.

레이저 센서로 사물을 감지하는 무인 지게차가 20kg들이 천연 치즈 상자를 작업대로 쉴 새 없이 실어 날랐다. 2m가 넘는 로봇 팔 여러 대가 이 상자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으면, 다른 로봇이 포장을 뜯고 치즈 원료만 꺼내 생산 라인으로 밀어 넣었다. 이곳에서는 연간 최대 7만5000t의 가공 치즈 생산이 가능하다.

공장의 위생 설비는 제약회사 수준에 맞췄다. 외부 공기가 공장 내부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직원은 모두 방진모를 쓰고 소독을 해야 작업장에 출입할 수 있다. 시계 및 귀금속도 몸에 지닐 수 없다. 모든 제품은 X레이와 금속 검사기를 통과해야 한다.

이 회사의 로드 스미스 영업회계 담당 매니저는 “1998년 이후 800만 호주달러(약 58억3144만 원)를 투자해 남반구 최대의 최첨단 치즈 가공 설비를 설치했다”며 “세계 어느 치즈 공장과도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성장 전략이 일자리를 만들었다

공장 자동화로 필요한 일손은 크게 줄었다. 컴퓨터가 주문을 분석해 치즈 원료 투입량 등을 생산 라인별로 자동으로 통제하기 때문.

치즈를 얇게 썰어 비닐로 포장하는 포장 라인의 인력은 자동화 이전 11명에서 지금은 5명으로 줄었다. 반면 분당 생산량은 2배로 뛰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다. 근로자는 1997년 100명에서 지난해 50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공 치즈 생산량은 5000t에서 5만 t으로 증가했다.

1990대 후반부터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중동 등으로 판로를 넓히는 성장 전략을 추진한 결과다. 공장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일거리가 크게 늘어나면서 일자리도 증가하는 선(善)순환이 일어난 것.

근로자의 인력 재배치도 함께 진행됐다. 치즈 상자를 뜯고 옮기는 단순 반복 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은 전문 교육을 받고 치즈 품질을 관리하거나 컴퓨터로 설비를 자동 통제하는 숙련 노동자로 바뀌었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지역 평생교육기관과 손을 잡고 음식 조리와 품질관리 등에 관한 전문 강좌를 개설했다.

○기업보다 더 기업다운 협동조합

베가치즈는 이 지역에서 젖소를 키우는 목장주 100명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생산자 협동조합 형태의 회사. 주주들은 농가별로 80∼600마리의 젖소를 키운다. 이들 축산 농가가 생산하는 우유는 연간 1억6500만 L에 이른다.

회사는 철저하게 수익성과 효율성에 따라 움직인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764곳의 생산자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지만 베가치즈처럼 성공한 기업은 많지 않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

이 회사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고 있다. 15년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다가 현재 해외영업담당 임원을 맡고 있는 모리스 반 린 씨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는 “경영진은 모두 축산 농가와 무관한 전문 경영자”라며 “경영진이 사업 아이디어를 권고하면 목장주로 구성된 이사회가 대부분 수용한다”고 말했다.

주주인 목장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원유(原乳)를 베가치즈에 판매해 수익을 내고, 매년 치즈 판매에 따른 배당 수익을 따로 받는다. 이 회사는 2005년에 1000만 호주달러(약 72억8930만 원)를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나눠 줬다.

가뭄이 들면 ‘가뭄 프리미엄’이라는 추가 수당을 주주에게 지급한다. 주주들은 이 돈으로 관개 시설을 확충하는 등 가뭄에 대비한다. 회사 내부에는 목장주를 지원하는 전담 조직도 있다. 원유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전담팀이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질 좋은 원유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다.

주주라고 해서 무조건 퍼 주지 않는다. 이 회사의 주주를 대표하는 배리 어빈 이사회 회장은 “상당수 생산자 조합이 새로운 인프라에 투자하기보다 주주에게 돌아가는 원료 값으로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그러면 결국 사업도 망치고 주주도 도울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성장을 위한 투자가 주주에 대한 배려보다 우선이고, 이 전략이 결국에는 주주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얘기다.

베가(호주)=박용 기자 parky@donga.com

■“소비자 최우선-한우물 경영이 최고 비결”

호주 베가치즈의 해외영업담당 임원 모리스 반 린(사진) 씨. 그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베가치즈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지금은 자리를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해외영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보통보다 두 배 크기의 명함을 쓴다. 기자를 만났을 때 명함을 둘로 접어 건넸다. 명함의 네 면은 각각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로 쓰여 있었다.

그는 1995년 이전까지 내수에 의존하던 베가치즈를 호주를 대표하는 수출기업으로 키웠다. 당시 호주 치즈업체는 모두 30개였지만 지금은 7개만 남았다. 몸집을 키우고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그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베가치즈는 199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 먼저 진출했다. 이어 2001년 중동지역으로 판로를 넓혔다. 2003년에는 이라크에 진출했다. 지금은 세계 50개국에 치즈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가운데 35%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해외 매출의 절반이 중동지역 수출 물량이다.

“가정에 냉장고가 드물고 냉장 유통시스템이 없는 중동 시장을 겨냥해 상온에서 2년간 보관할 수 있는 캔 치즈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비결로 ‘치즈에만 집중하는 전문성’과 ‘소비자의 욕구에 맞는 제품 개발 능력’을 꼽았다.

호주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도 베가치즈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2005년 미국 시장이 일부 열리자 미국에 치즈 150t을 수출해 50만 호주달러(약 3억6446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과거에는 관세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해외 치즈 브랜드를 사들이거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2015년까지 5억 호주달러(약 3644억 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특정 업체를 거론하며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 공동으로 사업을 해 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KOTRA 시드니무역관의 이기 관장은 “베가치즈는 생산 설비를 늘리며 시장 개방에 대비했다”며 “시장 개방의 폭이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이서 북미 수출도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베가(호주)=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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