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24시/실속파 신세대<7·끝>]"여가엔 돈 안아낀다"

  • 입력 2002년 4월 15일 17시 18분


“백 스윙할 때 채가 꼭 일직선이 돼야 하는 게 아니더라고. 자기 체형(體型)이 감안돼야 하고, 공을 히트하는(치는) 순간 어떻게 맞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15일 점심 식사 후 삼삼오오 커피 마시는 시간. 증권사에 근무하는 이영재 대리(33)는 전날 골프 레슨에서 배운 대로 시범을 보인다. 골프 경력 2년. 실력은 90대 중반을 왔다갔다하고 한 달에 2, 3번 필드에 나간다. 이 대리가 레슨에만 들이는 돈은 한 달에 23만원. 골프채 등 처음에 장비를 사는 데는 400만원가량이 들었다.

“운동 한두 가지 할 줄 아는 것은 당연한 세대니까 테니스 같은 건 이미 다 할 줄 알고요. 뭔가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 골프 아닐까요.”

20대에 골프에 입문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말단 사원 월급에 골프가 웬 말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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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2년 차인 김모씨(26·여)는 최근 친구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티켓값 10만원에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 3만원. 한달 월급의 10% 가까운 돈을 하루 저녁에 쓴 셈이지만 ‘무대 공연만큼은 좋은 자리에서 본다’는 것이 김씨의 원칙.

삼정회계법인의 1년 차 회계사 오지현씨도 큰 공연이 올라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보는 편이다. 이들 덕에 티켓값이 평균 8만원이나 하는 ‘오페라의 유령’ 객석 점유율이 약 93%나 된다.

어느 수요일 저녁. 서울 강남지역의 한 칵테일 바에 20대 초반의 직장 여성 5명이 앉아 있다. 가볍게 송연정씨(24)의 생일 잔치를 하는 중이다.

이들에게 ‘오늘 뭐 마실래?’는 소주 맥주 양주 중에 골라 늦도록 마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분위기의 바에서, 어떤 술로 ‘베이스’를 한 칵테일로 분위기를 낼까를 정하는 것이다.

광고업체 오리콤의 박동관씨(29)는 1주일에 1, 2번쯤 집에 가는 길의 바에서 키핑(보관)해 놓은 위스키나 데킬라를 마신다. 정신 없고 바쁜 속에서 이 30분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여유는 30분어치 이상이다.

박씨는 “우리 또래 직장인들은 ‘멋’스러운 요소를 삶의 구석구석에 섞어 넣는 데 들어가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버는 것도 별로 없는 말단 사원이 무슨 고급 여가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골프든 바의 칵테일이든 무대 공연이든 어색하지 않게 평생 생활의 일부로 담을 수 있을 테니까요.”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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