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24시]별을단 임원님⑥/아이 눈치보는 '외로운 아버지'

  • 입력 2002년 3월 18일 18시 06분


“일요일에 등산 가자.”

“이번 일요일요? 바쁜데….”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그런데 일요일에 뭐 하는데? 너도 대학 졸업반인데 취직 준비 같은 거 따로 해야 하지 않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응…. 그래…. 알았다.”

금호산업 박석인 상무와 다 커버린 아들의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모처럼 쉬는 일요일, 등산이나 외식을 하자고 해도 아들은 별로 따라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다. 친구들, 학교 생활, 고민, 취업 문제 등 궁금한 것이 끝도 없지만 세대차가 나는 아버지의 괜한 잔소리가 될까봐 꼬치꼬치 묻지 못한다. 아들에게는 ‘대범한 아버지’로 비치고 싶기 때문이다. 박 상무가 궁금함을 쏟아내는 대상은 항상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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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제당의 노재명 상무도 아내에게 거는 말의 대부분은 고교 2학년 아들의 생활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래도 여자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눈치인데 아들은 내색을 잘 안 한다.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굳이 닦달하듯 묻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궁금함은 참을 수 없다. 일찍 들어온 날은 일부러 학원에도 데리러 가고, “공부 잘 되니” “독서실에 친구들 많니” 등 다소 동떨어진 질문으로 뭔가 알아내 보려 하기도 한다. 1주일에 한 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외식을 한다. 아이들과 같이 있을 시간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다.

한솔CSN의 황병종 상무는 중학생 아들이 아빠에게는 안 하는 이야기를 엄마에게만 하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하다. 기업의 임원이니 회사에서는 성공한 셈이지만 바깥일에 바쁘게 매진하는 동안 집에서 ‘제3자’가 돼 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취직하고 결혼할 때까지 ‘아버지 역할’은 많다. 유학이라도 가고 싶다고 한다면 학비도 대주고 싶다. 아버지 역할이 남아 있는데 불의의 사고가 닥칠까봐 걱정도 된다.

노 상무는 건강진단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지난해 초부터 헬스클럽에 다닌다. 건강진단을 할 때마다 ‘혹시 뭐가 나타나면 어쩌나’싶어 긴장이 된다. 황 상무도 최근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갑자기 심장 이상으로 숨진 후 때때로 하던 줄넘기를 매일 한다. 골프 등 다양한 운동에 능해 ‘건강의 대명사’로 통하던 후배였기 때문에 충격이 남달랐다. 챙겨야 하는 경조사 중에 어느 때인가부터 ‘친구 아무개의 부친상’이 아닌 ‘친구 아무개 별세’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도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수많은 부하 직원을 거느리는 기업의 임원도 가정에서 만큼은 여느 아버지와 똑같은 고민을 한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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