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CEO열전]표문수 SK텔레콤 사장 "보고 보다는 토론을"

  • 입력 2001년 1월 11일 18시 25분


새해들어 SK텔레콤 임원 회의에서는 종이 보고서가 사라졌다.

지난해말 취임한 표문수(表文洙·48)사장이 “회의장에는 종이 보고서를 들고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모든 보고용 자료는 임원들끼리 사전에 E메일로 주고받고 회의장에서는 자유토론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표사장은 “임원회의가 부하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와 읽는 자리에 그쳐서는 곤란하다”며 이같은 회의 방식을 도입했다. 이후 임원회의 분위기가 열띤 토론장으로 변한 것은 당연한 결과.

임원들에게는 또다른 숙제도 주어졌다. 복수전공 제도가 그것. 표사장은 임원이라면 전공분야외에 훤히 꿰뚫고 있는 분야가 적어도 1개는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모든 임원들에게 복수전공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임원회의에서 마케팅 담당 임원이 홍보 관련 업무도 보고하고, 영업담당 임원이 마케팅 관련 업무도 보고하는 방식이다.

재계에 ‘공부하는 경영자’로 알려진 표사장의 임원 담금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표사장은 50명 임원을 대상으로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경영상의 주요이슈를 주제로 임원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중 세미나를 실시한다는 구상이다.

첫번째 주제는 ‘위기관리’. 휴대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의 경우 잘못된 기술선택과 투자로 기업의 존립을 위협받는 위기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관리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게 표사장의 생각이다. 매출액 5조7000억원, 세전 순익 1조4000억원의 창사이래 최대의 경영성과를 기록한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시장점유율 축소 등 극복해야할 난관이 많다는 판단이다.

표사장이 이처럼 임원 훈련에 힘을 쏟는 까닭은 임원 개개인의 경쟁력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소신에서다. 그는 “임원 자리에 오르면 결재서류에 도장만 찍고 부하직원에게 지시만 하려는 것은 곤란하다”며 “임원들이야말로 기업내에서 가장 노력해야할 계층”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 임원들의 의사결정 능력이 향상되면 미래의 최고경영자 역할을 담당할 ‘CEO풀’도 탄탄해진다는 것. 이는 외삼촌이자 SK그룹 선대회장인 최종현 회장으로 물려받은 경영철학의 소산. 스스로 전문경영인임을 자부하는 그는 “경영자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때가되면 후배들을 위해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한다”며 “스스로도 열린 마음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기획조정실장, 무선사업부문장을 거치면서 2선에서 SK텔레콤의 성장을 이끌어온 표사장은 사내에서는 손꼽히는 ‘멀티즌’이다. 정보통신 서비스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부터 앞장서서 첨단 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한다는 취지에서 PDA와 휴대폰, 노트북PC를 업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첨단에 뒤지고서는 디지털시대 경영자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PDA에는 모든 일정이 항상 입력돼 있어 비서로부터 일일이 보고받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확인한다. 차량으로 이동중 E메일 점검이나 휴대폰 무선인터넷 활용은 기본. 틈틈이 익혀둔 자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내용을 불시에 임원들에게 되묻기도 해 임원 사이에는 자사 서비스 공부하기 바람까지 불고 있다. 지난 99년 011휴대전화 1000만 가입자 돌파, 신세대용 브랜드‘TTL’의 성공 등 그가 쌓아온 업적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입증하는 대목.

취임 2개월째인 표사장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을 연결하는 단일 통화권 구축. 그는 “동북아 단일통화권 구축은 3국의 공통 관심사지만 중국은 일본을 꺼리고, 일본은 중국을 꺼리고 있어 SK텔레콤이 매개역할(허브)을 수행할 적임자”라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국내 지식산업의 무대를 동북아 시장으로 넓히기 위해 일본 NTT도코모, 중국 차이나모바일과의 제휴아래 진행중인 이러한 작업은 올해중 NTT도코모의 지분참여를 계기로 더욱 구체화할 전망.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다음달부터는 이들을 직접 찾아나설 계획. 국내 주식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큰 SK텔레콤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이야말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해외 사업자들과의 교류도 확대해 BT나 보다폰, NTT도코모 같은 글로벌 사업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한다는 전략도 수립했다.

대표이사 취임을 계기로 국내외 CEO들과의 인적네트워크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표사장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자는 GE의 잭 웰치회장. 웰치회장과는 과거 세미나에서 한두차례 마주친 것이 전부지만 미래를 꿰뚫는 비전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결단력을 귀감으로 삼고있다.

“3년뒤 세계 시장의 역학관계는 무엇일까, 또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SK텔레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21세기 국가경제의 핵심축인 통신산업의 전면에 나선 표문수사장. 그는 오늘도 웰치회장이 GE 임원들에게 던진 것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정답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표문수 사장은…▼

△1953년 경기 수원 출생

△경기고 졸(72년)

△서울대 농과대학 3년 수료(78년)

△미국 보스턴대 경제학과 졸(79년)

△미국 터프츠―보스턴대 경제학 석사(82년), 박사(86년)

△미국 보스턴대 조교수(86년)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부장(90년)

△대한텔레콤 이사(94년)

△SK텔레콤 기획이사(94년)

△SK텔레콤 경영기획실장(95년)

△SK텔레콤 전무이사(97년)

△SK텔레콤 부사장(2000년)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2000년 12월 13일)

●주량:소주 반 병

●담배:하루 반 갑

●취미:음악(클래식) 감상

●가족관계:1남2녀

●종교:천주교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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