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낮과 밤]"실력으로 승부한다"…거세지는 '女風'

  • 입력 2000년 2월 28일 23시 10분


《도전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은 더욱 아름답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력으로 떠오른 벤처기업에는 도전이 있고 열정이 있다. 그리고 우리 경제의 새로운 희망이 있다. 아이디어와 땀을 섞어 희망을 키우는 곳, 그곳 벤처의 ‘낮과 밤’을 들여다본다.》

28일 오전 11시. 전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지만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제3시장 인터넷 사이트의 디자인 시안을 오전까지 보내줘야 한다. 토요일에는 집에도 못들어가고 회사에서 밤을 샜다.

▼주말에도 회사에서 밤샘▼

벤처기업 버추얼텍의 디자인팀장 임애라씨(27·여).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95년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버추얼아이오시스템(현 버추얼텍)에 입사했다.

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임씨는 일주일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고작 2,3일 정도. 회사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집이 멀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그만큼 일이 많다는 뜻. 여자라고 일감을 덜어주거나 봐주는 법은 없다. 출퇴근 시간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대신 누구든 맡은 일은 기한내에 끝내야 한다.

일만 놓고 보면 벤처기업은 여성에게 그리 쉽지 않은 직장이다. 임씨는 “‘잘 나가는’ 게임개발업체에 다니는 친구 하나는 몸을 상해 1년간 휴직했던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래도 다른 직장에 비하면 벤처기업은 여성들에게 ‘천국’이다. 규모가 제법 큰 업체의 비서직이 아니면 여직원이라고 커피타는 일같은 잔심부름을 하는 법은 거의 없다. 대기업에선 여자 임원이 나왔다고 화제가 되지만 벤처기업은 능력이 우선이다.

▼애 옆에 앉혀놓고 작업도▼

인터넷카드업체인 레떼컴의 경우 오히려 여성 직원이 더 많다.

소팀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에선 전체 7명 가운데 마케팅팀장 디자인2팀장 서비스운영팀장 등 3명이 여성이다. 김경익 사장은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 성별이나 학력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추얼텍의 경우 서지현 사장을 포함해 전체 직원 50여명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여성이고 주부도 5명이나 된다. 김윤 홍보팀장은 평일에는 시댁에 아이들을 맡겼다가 토요일 팀장회의에는 애들을 데리고 나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원들에게 맡긴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간혹 애들을 옆에 앉혀놓고 일을 하는 사원들이 있지만 누구하나 뭐라하는 사람이 없다. 대기업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최근에는 코스닥시장 붐이 일면서 벤처기업에 다니는 미혼 여직원들이 ‘1등 신부감’으로 꼽히고 있다. 전문직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우리사주와 스톡옵션으로 결혼 전에 이미 수억원대의 재산을 축적하는 경우도 생겼다.

▼결혼전 수억대 재산 보유▼

그러나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남성 위주인 게 현실. 특히 직접 경영을 하는 여성 기업인은 손꼽힐 정도다. 98년 7월 설립된 한국여성벤처협회의 회원사는 약 80여곳이지만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으로는 버추얼텍의 서사장이 거의 유일한 케이스.

인터넷접속률조사업체인 인터넷매트릭스 이상경 사장, 인터넷비즈니스 교육 컨설팅업체인 e코퍼레이션 김이숙 사장, 반도체전문포털인 사이버디스티의 홍미희 사장, 오토피스엔지니어링 정희자 사장, 컨텐츠코리아 이영아 사장도 해당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벤처기업인들이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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