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고슬고슬… 말랑말랑… 탱글탱글 꽁보리밥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어릴 적 ‘동네 한 바퀴’란 곡에 가사를 바꿔 부른 ‘꽁당보리밥’ 노래이다. ‘꽁’은 ‘깡그리’할 때의 ‘깡’과 같다. ‘전부’ ‘모두’라는 뜻이다. 꽁당보리밥이란 ‘쌀 한 톨 안 섞인 완전보리밥’이다.

아이들은 마지막 구절을 ‘보리밥 먹는 사람♬∼ 방귀도 잘 뀌네♬∼’로 바꿔 부르며 킥킥 거렸다. 선생님은 ‘혼식을 하면, 한 해 수십만 섬의 귀한 쌀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쌀과 보리를 7 대 3 비율로 혼식해야 건강에 좋다’고 덧붙였다.

꽁보리밥은 으레 점심이나 저녁에 먹었다. 아침은 쌀이 섞인 흰 보리밥이 보통이었다. 어머니는 들일 나가기 전에 보리밥부터 지었다. 보리쌀을 돌확에 맑은 물이 우러나올 때까지 박박 밀어가며 씻었다. 그리고 그 보리를 살짝 삶은 뒤 찬물에 한번 헹구어 밥을 지었다. 물은 쌀밥 지을 때보다 적게 넣었다. 밥이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솥뚜껑을 열고, 그 위에 동부 콩을 얹었다. 어느 땐 삶은 감자도 넣었다. 무쇠솥이 콧김을 킁킁거릴 때쯤이면, 누렁이가 슬슬 부엌을 맴돌았다.

꽁보리밥은 대소쿠리에 담아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시원한 대청이나 바람 잘 통하는 뒷방 대들보가 안성맞춤이었다. 소쿠리 위엔 꽃무늬 삼베보자기를 덮었다. 구수한 보리밥 냄새가 솔솔 흘렀다. 코가 벌름벌름 혼곤했다. 소쿠리 겉엔 보리밥물이 약간씩 배었다. 파리들이 미친 듯이 꾀었다. 진주만 기습하는 일본군 비행기들처럼 왱왱거렸다. 손을 싹싹 비비며 ‘한 번만 맛보게 해달라’는 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소쿠리 안의 보리밥은 석굴 안의 부처님이었다.

대소쿠리 보리밥은 고슬고슬했다. 보리밥 알갱이는 입속에서 공처럼 놀았다. 말랑말랑 차지고, 혀끝에 탱글탱글 걸렸다. 한번 잇새에 숨으면 여간해선 빼내기 힘들었다. 점심은 평상에서 논일 차림 그대로 먹었다. 아버지는 텃밭에서 오이와 고추를 몇 개 뚝 따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그러고는 고봉보리밥을 찬물에 훌훌 말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은 뒤, 오이고추를 강된장에 푹푹 찍어 먹었다. “아∼ 달고 시원하다.” 아버지는 몇 번씩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뿡! 뿡! 가끔 보리방귀 소리에, 마당의 닭들이 놀라 달아났다. 냄새는 삼베바지 사이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크윽∼” 누군가가 보리숭늉을 마신 뒤 트림을 했다.

보리밥은 소화가 잘된다. 식이섬유가 쌀의 5배가 넘는다. 대장활동을 활발하게 해준다. 잦은 방귀는 그만큼 대장에서 발효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다. 방귀냄새도 구수하고 맑다. 고기 먹을 때 나오는 썩은 방귀와는 다르다. 비타민이나 필수 아미노산도 풍부하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춘다.

중국 혁명가 마오쩌둥(1893∼1976)은 만성변비증 환자였다. 그가 쭈그리고 앉아 끙끙댈 때면 관자놀이 혈관이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한 네닷새 똥을 못 누면 주위 사람들에게 마구 신경질을 내고 들들 볶았다.

그의 경호원들은 마오쩌둥이 한 8∼9일 낑낑대다가 똥 누는 데 성공하면 “주석님 창자가 움직였다! 주석님이 똥을 누셨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열흘 정도 배설을 못하면 그의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파내야 했다. 마오쩌둥은 “똥 누는 일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며 투덜댔다. 만약 마오쩌둥이 보리밥을 즐겼다면 변비는 없었을 것이다. 보리밥은 변비에 특효인 것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고향보리밥 집(02-736-9716)은 소박한 시골밥상이다. 식당도 골목 후미진 곳에 있는 데다, 수수하고 꾸밈이 없다. 보리밥이 고슬고슬하다. 걸쭉한 된장찌개와 열무김치도 일품이다. 노란 기장밥과 우거짓국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열 가지 넘는 채소와 보리밥을 상큼한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먹으면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난다. 임정순 주인할머니의 손맛도 어머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앞 옛날보리밥집(02-594-1124)도 맛이 깔끔하다. 풋풋한 햇고추장에 고소한 참기름, 새콤한 열무김치가 그만이다. 서울 우면산꽁보리밥집(02-585-4379)도 발길이 붐빈다. 요즘 보리밥집은 인테리어가 세련된 곳이 많다. 서울 중심가에 뷔페식 체인점도 눈에 띈다.

어릴 적, 보릿고개(4, 5월) 때는 모두가 허기져 어지러웠다. 아이들 얼굴은 누렇게 떴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아이들은 익지도 않은 청보리를 보릿대째 뽑아다가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 불에 익은 풋보리를 손바닥으로 비빈 뒤 후후 불어, 그 말랑말랑하고 고소한 풋알갱이를 입에 넣었다. 저마다 입가에 검댕이 묻어 부엌강아지 같았다. 보리 가시가 손바닥을 찔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보리피리를 불며 놀았다.

‘꽁보리밥/물에 말아 풋고추에 된장 찍어/썩썩/한 그릇 해치우면/세상 무서울 것 없던 시대.//아아/추억은 세월을 삼키고/꽁보리밥은/나를 이렇게 키웠구나./고향이 그리울 제/고향집 꽁보리밥/엄마가 보고플 제/고향집 꽁보리밥 먹으러 감세.’ <윤용기의 꽁보리밥‘ 부분>

3, 4월엔 청보리 푸른 파도가 출렁였다. 동해바다 같았다. 5, 6월엔 황금빛 누런 파도가 춤을 췄다. 늙은 서해바다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6월에 먹는 햇보리밥은 꿀맛이었다. 다디달았다. 어머니가 햇보리로 처음 지은 보리밥. 그 둥근 보리밥 알갱이는 어찌 그렇게 부처님 볼과 닮았던지.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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