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1>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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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美미래학자와 토론… 산업화 전략 찾아”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워싱턴의 밀레니엄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워싱턴의 밀레니엄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68)은 향후 10∼20년 인터넷 등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 등 첨단기술 발달이 기술뿐 아니라 정치 체제와 경제 상황 등 세계의 얼굴을 전반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반가량 미국 워싱턴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와 30일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2030년에 닥칠 인류의 도전 과제와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일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언한 2030년 미래 대비 8대 전략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
―가까운 미래에 인류에게 닥칠 가장 벅찬 도전은 무엇인가.

“밀레니엄프로젝트가 매년 발간하는 ‘미래의 상태(The State of the Future)’에 15가지 지구적 도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지하수 고갈, 인터넷을 통한 정보통신 혁명, 인구 증가와 자원의 고갈, 테러, 재난 재해, 위협 받는 인류의 건강, 합성생명공학 등 바이오혁명 등은 지구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이 같은 도전은 상호의존적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도전에 대한 해법 또한 특정 기관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 국가에서 나 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 국제기구 기업 대학 시민단체 및 창의적인 개인이 협업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

―미래의 정치영역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아니면 전자민주주의 같은 직접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힘을 발휘할 것인가.

“아주 복잡한 상황이 예상된다. 전통적인 정당이 있고 국가권력이 존재하겠지만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이 이런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을 보라. 정보기술 발달로 기업의 정치적 권력도 커지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능력이 커지면서 정치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점점 복잡해지는 정치 상황에서 개인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전망한다면….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기업과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개인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이 인터넷과 미디어로 여론을 형성하고 국가 간의 조약 체결도 촉구할 수 있다. 보통의 개인은 이런 능력이 없지만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으면 가능하다. 개인이 이런 힘을 가졌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동아일보와 같은 영향력 있는 미디어가 줄 수도 있다. 한국에선 개인이 인터넷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변화를 준 경험을 하지 않았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잠재적인 권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계속 자기 확장을 할 것인가.

“사회주의 사회에선 생산수단이 공장이었고 국가 소유였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을 사적인 기업이 소유했다. 지금은 인터넷과 소프트웨어가 생산수단이다. 이것은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non ownership)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개인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문제는 속도다. 누가 아이디어를 빨리 만들어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해 인터넷에서 시장을 만들고 혁신으로 부를 창출하는지가 중요하다. 은퇴자도 고등학생도 돈을 벌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향후 국제질서를 전망한다면….

“중국은 10∼20년 안에 풀어야 할 큰 문제가 4가지 있다.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고 민족 문제와 관련한 내전이 있다. 이슬람세력이 들어와서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물과 에너지는 부족하다. 마치 째깍거리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엔 국제질서도 단순했다. 미국과 옛 소련 양극체제였고 모든 것이 간단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권력이 커졌다 줄었다 한다. 산업화 시대와 달리 지금은 인터넷에서 하루 만에 회사를 만들 수도 있다. 복잡한 다극화 시대에 미국은 주도하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할 것이다. 중국은 큰 문제들을 해결해야 2강 체제의 지위를 얻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미래에 투자해야 할 부문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면….

“합성생물학과 3D 입체 프린팅, 해수 농경기술, 동물을 키우지 않고 고기를 만드는 기술에 투자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합성생물학은 유전공학과는 개념이 다른 것이다. 전혀 없었던 종(species)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산업혁명보다도 더 넓은 혁명이다. 자동차산업이 만든 차와는 달리 만들어진 생명체는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인터넷이 몰고 온 급속한 변화도 합성생물학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다.”

―3D 입체 프린팅은 어떤 것인가.

“(탁자에 놓인 종이를 들며) 이것이 2D 프린팅이다. 컴퓨터로 집을 설계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 카트리지 안에는 잉크가 들어 있고, 다른 카트리지에는 아교가 들어 있다. 또 다른 카트리지에는 점토가 있다. 아교와 점토가 뿌려지면서 입체적인 집이 인쇄된다. 집을 설계한 다음 입체 인쇄를 보여주고 설계를 고친 뒤 다시 프린트하게 된다. 3D 프린팅은 산업혁명을 분권화(decentralizing)한다. 생체근육을 인쇄할 수도 있다.”

―미래에 지하수 고갈로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제는 민물 농경에서 해수 농경으로 바꿔야 한다. 1만여 종의 식물이 바닷물에서 살 수 있고, 유전자 변형으로 더 많은 종을 키울 수 있다. 바닷물을 육지로 끌어와 농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기후 변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아름다운 제주도도 있지 않나. 해변이 긴 한국이 해수 농경을 하면 비가 안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이오 혁명은 인간의 삶을 바꿔놓을 것인가.

“동물 없이도 고기 만드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동물을 키우는 데 3∼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기를 복제할 수 있다면 눈과 가죽 등 필요 없는 다른 부위를 만들지 않고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근육을 만들 수도 있다. 가죽을 복제하면 동물을 잡지 않고도 가죽구두를 신을 수 있다. 이것이 생물학적 혁명이다. 북한 어린이에게 철분과 단백질을 공급할 수도 있다. 아직 아무도 이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인류의 거대한 사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실업률은 치솟고 고령화사회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데….

“은퇴한 뒤에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음원을 팔거나 기술을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업을 구하러 다니는 대신 인터넷에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은퇴자들이 굳이 차가 붐비는 서울에 갈 필요도 없다. 은퇴자들이 직업이 아닌 시장을 만들도록 하면 된다. 대학 졸업자들이 실업자가 되는 현실에서 직업이 아니라 시장을 찾으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2030년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통적 농업국가에서 지금의 잘사는 나라로 만들 장기 전략을 갖고 있었다. 박 당선인은 청와대에 미래위원회를 만들어 내각의 미래기획 작업을 총괄해야 한다.”

―미래분야 투자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안은….

“한국의 ‘국가미래지수’를 만들어 매년 보고서를 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업하고 청와대가 조율해야 한다. 청와대 내에 모든 정부기관을 조율해 지수를 만드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미래지수는 자동차 숫자와 박사학위 소지자 등 10∼30개 요소를 포함한 ‘10년 인덱스’ 형태로 만들면 된다. 이 지수를 통해 10년 뒤에 집중 투자할 중요한 부문이 어떤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박 당선인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의 미래학자 허먼 칸과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몇 달에 한 번씩 만나 대화하면서 미래를 토론했다. ‘오프 더 레코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토론했다. 박 당선인도 조용히 미래를 고민하면서 전 세계의 미래학자들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과 칸의 대화는 ‘박정희의 성공’에 아주 비밀스러운 부분이었다. 이들은 한 번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계속 대화함으로써 국가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버지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한국의 경제가 2030년에 세계 5위에 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데….

“맞는 말이다. 25년 전만 해도 한국이 교통과 통신기술, 철강 생산, 조선업에서 미국과 경쟁할 것이라고 누가 믿었겠나. 한국인은 25년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있다.”
:: 제롬 글렌은 ::

미국의 대표적인 미래학자. 미래연구 싱크탱크인 밀레니엄프로젝트와 세계미래연구기구협의회 회장, 유엔대 미국위원회 이사를 맡고 있다. 1945년 태어나 아메리칸대(철학)를 졸업하고 미래학으로 안티오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매사추세츠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페루와 칠레에서 명예박사 및 교수 직위를 받았다.

40여 년간 정치 교육 과학 산업 정부 등 다양한 분야의 미래를 연구하며 뉴욕타임스 리더스 퓨처리스트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저서로는 ‘미래 마인드’, ‘유엔 미래보고서’, ‘미래와 연결하기’, ‘공간 여행: 끝없는 이주’(공저) 등이 있다.

그가 이끄는 밀레니엄프로젝트는 1988년 시작된 유엔의 새 천 년 미래 예측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1996년에 창립된 비정부기구(NGO).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유엔 및 산하 연구기관 등과 협조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워싱턴=최영해·신석호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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