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서울行/북경체류33일]2평남짓방서 명상과 집필

  • 입력 1997년 3월 17일 07시 34분


지난달 12일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신청, 17일 출국할 가능성이 큰 黃長燁(황장엽)북한노동당비서의 영사부 체류 33일은 한마디로 온갖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생존투쟁이었다. 북한 요원들의 습격, 좁은 공간에서의 단조로운 일상, 한달 이상을 끈 망명협상 등이 그에게 견딜 수없는 불안감을 증폭시켜 온 것. 오직 제삼국을 거쳐서라도 한국에 갈 희망이 보인다는 사실만이 74세 노인 황비서를 끝까지 지켜준 원동력이었다. ▼ 서울 의료진 파견 ▼ 황비서의 영사부 체류가 길어지면서 우리측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건강문제. 다행히 큰 탈없이 중국을 떠났으나 만일의 사태발생에 대비, 서울에서 의료진을 극비리에 초빙해오는 등 진통을 겪었다. 황비서는 영사부 체류기간중 기복없이 1백20―70의 혈압을 유지, 관계자들을 안심시켰다. 오히려 배가 불룩나온 金德弘(김덕홍)이 지병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역시 건강에 커다란 문제는 없었다. 식생활에도 큰 문제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비서는 평소 습관대로 아침식사는 하지 않았다. 점심과 저녁식사는 북경의 한국음식점인 한성관에서 주문해 먹었으나 이곳이 언론에 노출된 이후부터 황비서 식사 만큼은 영사부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한성관측은 모두 20여가지의 한식메뉴를 영사부에 제공해왔으나 보신탕과 미역국은 재수가 없다는 속설에 따라 제외시켰다는 후문이다. 황비서의 하루생활은 몹시 단조로웠다. 2평 남짓한 2층방에서 명상과 집필이 주일과였고 영사부직원 등 사람들과의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화장실 출입과 3층 샤워장에 오갈 때 우리측 관계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간단한 목례만 나누었을 뿐 철저히 격리된 공간에서 숨막히는 나날을 보냈다. 술과 담배도 원래 하지 않는 그는 하루 4시간 정도만 수면을 취해 영사부직원들도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함께 망명을 요청한 김덕홍과도 자주 만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황비서가 집필하고 있는 내용은 주체사상과 관련된 철학적인 것과 함께 자신의 과거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 협상과정 무관심 ▼ 영사부 생활 초기에는 필요한 진술도 하고 관련인사들도 만나곤 했으나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일도 드물어졌다. TV나 신문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또 협상과정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자신이 제삼국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은 鄭鍾旭(정종욱)주중대사로부터 16일밤 통보받았다. 처음 황비서가 영사부에 망명을 요청했을 때만 해도 엄청난 정보의 보고가 굴러들어왔다는 기대감이 컸으나 예상외로 털어놓은 게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비서 자신이 폭로하는 스타일이 아닌 데다 그가 정치인이나 행정가라기보다는 사상가여서 북한의 각종 구체적인 정보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게 우리측 관계자들의 진단. 다만 그가 북한 최고위층과 가까웠기 때문에 권력층 내부의 분위기 등 북체제 전반에 대한 통찰력있는 증언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계자들은 영사부에서 초기에 필요사항을 진술받은 것 외에는 특별히 정보제공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차피 서울에 가게 될 것이고 나이가 많은 거물지식인에게 일반 탈북자들처럼 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말을 아끼는 황비서였으나 간간이 자신의 심경도 털어놨다. 황비서는 자신이 일본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영접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이던 중 격분한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말했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는 것. 또 지난달 17일 북한이 외교부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변절자여 갈테면 가라』고 한 것과 관련해서는 『남한도 조국이며, 민족은 남북한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라며 『내가 왜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변절자인가』라고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와 대화를 해본 사람은 그가 절대로 한번 한 말을 다시 중언부언하지 않은 매우 논리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한다. 황비서의 영사부 체류기간중 최대 과제는 안전문제였다. 황비서와 김덕홍이 머물렀던 2층방에는 창문마다 방탄철판을 덧붙여 저격가능성에 대비했다. 또 영사부 인근건물의 옥상 등을 정밀점검하기도 했으나 주위에 고층건물이 없고 나무 등으로 가려 있어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공안 역시 영사부로 통하는 다섯군데의 골목입구를 완전 차단하고 장갑차와 물대포까지 대기시켰다. ▼ 北진입기도 비상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측 관계자들은 한때 북측요원들이 영사부진입을 시도, 초긴장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난달 14일 오전 1시쯤 50여명의 북한요원들이 맹렬한 기세로 영사부 정문을 향해 돌진했으나 다행히 중국공안에 의해 저지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우리측 관계자는 『인디언이 요새를 습격하는 장면을 방불케 했다』고 회고했다. 사건 직후 영사부내 20여명의 우리측 관계자들이 새벽 비상회의를 개최, 유사시 황비서를 몸으로 막는 문제를 비롯해 교민안전대책 등을 집중 협의하는 등 극도의 긴장된 분위기가 영사부에 감돌기도 했다. 황비서의 망명드라마는 북체제에서 한국진영으로의 극적인 귀순, 좁은 공간에서의 장기체류, 중국과 남북한의 3각외교전, 제삼국 경유 등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채 「북경시리즈」가 끝나고 바야흐로 제2막이 시작된 셈이다. 〈북경〓황의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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